'제38기 왕위전 도전기 5국' 이창호의 십면매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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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38기 왕위전 도전기 5국
[제7보 (98~118)]
黑.이세돌 9단 白.이창호 9단

한의 명장 한신이 초왕 항우를 향해 펼쳤던 구리산의 '십면(十面) 매복'은 유명하다. 지금 두 사람의 접전에서 그때의 광경이 재현되고 있다. 이창호9단이 한신이라면 이세돌9단은 항우다.

역사소설에 묘사된 것으로 상상한다면 필마단기로 싸울 때 항우보다 강한 사람은 없어보인다. 바둑판 위의 단병접전이라면 이세돌보다 강한 사람은 없어보인다. 이세돌은 초반의 방심으로 대세를 그르쳤지만 사면초가 속에서도 절륜의 무공으로 좌하와 좌상을 모두 살려냈다. 그러나 이창호의 포위망은 뚫린 듯했다가 다시금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다. 어쩌면 포위망은 이제부터가 진짜인지도 모른다.

100과 102, 그리고 104로 서서히 양쪽을 압박한다. 백의 진용은 기치 정연하고 흩어진 흑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운데 두 군데 중 어디부터 먼저 구해야 할 것인가

105의 희생타. 이 한 수에 검토실에선 찬사가 쏟아진다. 겹겹의 포위망 속에서 이세돌은 타고난 전투감각으로 탈출구를 찾아냈다. 107에 백은 '참고도'처럼 잇지 못한다. A, B의 연단수가 기다리고 있어 흑 4, 6으로 쭉쭉 밀어오면 백도 공격이 어려워진다.

위험을 감지한 이창호는 108로 한발 물러서서 예봉을 피한 다음 110에서 다시 흑의 진로를 막아선다. 이세돌은 사력을 다해 패를 만들어 역습을 노린다. 백이 C로 한발만 물러서 준다면 희망이 있다. 그러나 잘 물러서던 이창호도 이 장면에선 118로 패를 쓰며 꿈쩍도 안 하고 버텨온다 (111, 114, 117은 패때림).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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