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386 개혁'은 어떤 개혁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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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어제 조간신문의 사진 한장은 우리를 참으로 씁쓸하게 만든다. 청와대에서 열린 민주당 낙선자 위로만찬에서 한 낙선자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큰절을 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이다.

사진의 주인공은 요즘 한창 기대를 모으는 386정치신인의 대표적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왜 큰절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비슷한 시각 386출신 당선자들이 모여 보스정치 타파를 주장하고 있는 모습과 비교할 때 그 사진은 386세대의 표리(表裏)를 보여준 게 아닌가 하는 인상도 지울 수 없다.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젊은 정치신인들의 정치개혁 움직임에 거는 기대는 크다. 그들은 여야와 계파를 초월하고 지역을 초월해 새로운 정치를 위한 연대를 결성하겠다는 뜻을 천명하고 이미 그런 모임을 시작했다.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국민의 정치개혁 열망을 반영하는 새로운 움직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의 의지가 그대로 유지되고 이어져 당내에서는 새 바람을 일으켜 당내 민주화를 앞당기고 국회에서는 활발한 정책토론을 이끌어내 국정의 질을 한 차원 높이기를 기대해마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몇가지 점에서 궁금한 점이 없지 않다. 비단 그 사진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들 젊은 정치신인들이 과연 보스정치를 깨뜨릴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이번에 당선된 386세대들은 지역에 별다른 뿌리가 없다.

그들은 혹시 DJ당.회창(會昌)당이라는 비난을 피하려는 겉포장에 불과하지는 않은지, 또 갑자기 수혈한 이 '새 피' 가 정말 당 체질을 고칠 만큼 신선한 것인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과연 정치개혁을 주장할 만큼 이번 총선과정에서 선거법을 잘 지키고 규정된 선거비용만을 썼느냐는 의문도 든다. 이미 그들 중엔 상당한 선거비용을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궁금한 점은 그들이 하고자 하는 개혁은 어떤 개혁인가 하는 점이다. 그들은 기존정당의 간판 아래서 선거를 했기 때문에 분명한 검증절차를 거치지 못했다. 그들이 이제 당을 넘어 연대하겠다는 노선은 무엇이며, 또 그들이 개혁하겠다는 대상은 무엇인지가 불분명하다.

만약 그들이 추종했던 1980년대의 체제부정적인 이념의 선상에서 개혁을 주창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개혁내용과 목적을 좀더 꼼꼼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우리는 386정치신인들이 연대하겠다는 이념적 노선은 무엇이며 어떻게 고치자는 것인지를 먼저 분명히 하고 그 바탕 위에서 구체적 개혁 어젠더를 내놔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정치권이 필요로 하는 것은 부패하고 비생산적인 1인중심의 3金식 정치풍토를 혁파하는 것이지 그저 젊고 새로울뿐인 '운동꾼' 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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