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난민 못받겠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난민에 대해 가장 관대했던 서유럽 국가들이 난민 유입을 막는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영국 보수당의 윌리엄 헤이그 당수는 19일 난민촌을 만들어 현재 각 지역의 공공 주거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난민들을 강제 수용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데일리 텔레그래프 등 영국 언론들은 18개의 주요 도시에 난민시설을 만드는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첫해 비용으로만 9억파운드(약 1조5천억원)가 필요해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지만 상당수 영국인들은 이 계획에 찬성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6월 말까지 3천명 가량의 코소보인들을 추방할 계획을 세운 영국 정부는 20일 처음으로 60명의 알바니아계 코소보인들을 편도 비행만 가능한 분량의 연료를 주입한 항공기에 실어 유고로 돌려보냈다.

영국 정부는 또 최근 20만명 가량의 난민들에게 지급하는 주당 현금 10파운드(약 1만6천원)의 생계비를 상점에서 식품과 옷만 살 수 있는 쿠폰으로 대체키로 했다.

벨기에 정부도 19일 슬로바키아계 난민 1천5백명을 본국으로 돌려보내기?하고 10일 내에 자진해 떠날 경우 항공편을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벨기에는 동구권에서 유입된 난민만도 10만명 가량으로 불어나자 지난해 10월 처음으로 불법 체류자들을 추방하는 법을 만들었다.

전체 유럽 난민 2백60만명의 20% 가량이 살고 있는 독일은 수년 전부터 난민촌을 만들어 집단수용하고 있으며 최근엔 체류 허가 기준을 높여 신청자 중 3%정도만 정식 난민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서유럽 국가들의 반 난민정책은 최근 10년 동안 한해 평균 30만명 가량 유입된 데 따른 수용능력의 한계와 함께 정치적 고려에 의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영국 언론들은 보수당의 제안은 다음달 실시되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를 모으기 위한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난민들의 구걸행위.범죄 등에 대한 피해의식 때문에 주민들이 이들을 추방하라는 집단민원까지 제기하고 있는 점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8일 실시된 이탈리아 지방선거에선 이민법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우파연합이 과반수 이상의 지역에서 승리했다.

또 오스트리아의 자유당 등 유럽 우파정당들은 대부분 불법 체류자 추방정책을 표방하고 있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은 지난 10일 영국 보수당에 난민문제를 선거에 이용하지 말도록 경고했다.

UNHCR의 한 보고서는 1910년대 러시아 혁명, 20년대 그리스.터키전쟁, 30년대 스페인 내전, 40년대 2차대전 등을 겪으며 유럽인들이 자신들도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난민에 관대했으나 전쟁을 겪은 계층이 점차 줄어들며 포용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상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