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읽기] 1. 'TV읽기'를 시작하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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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총선시민연대 장원(녹색연합대표) 대변인은 낙선운동에 뛰어든 이유를 명쾌하게 요약했다.

"정치의 BOD (생화학적 산소요구량) 수치가 너무 높았습니다." 한마디로 오염됐다는 뜻이다.

환경운동을 하는 그가 느끼기에 한국정치의 돌아가는(썩어가는) 꼴이 숨막혔던 모양이다.

한국의 TV는 어떤가. 그 산소요구량의 수치 또한 만만치 않을 듯싶다.

누가 요구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애국하겠다고 진흙바닥에 뒹굴기를 마다하지 않는 의원님들의 '고결한' 희생정신이나 시청자를 기쁘게 하겠다는 일념하에 '벗기기' 와 '베끼기' 도 서슴지 않는 PD분들의 '눈물겨운' 봉사정신 또한 우열을 가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총선시민연대가 나름의 수확을 거둘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결심의 순수함과 결행의 집요함이다.

시청자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 모델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정치인은 그 속성상 바뀔 가능성이 매우 작다.

유권자 집단 또한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가면을 쓰기 쉽다. 깨어있는 제3의 세력이 큰 소리로 "이것이 중요하다" 며 외쳐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PD는 그 처지가 시청률의 노예처럼 될 개연성이 매우 큰데 그것은 이 수치가 바로 리모컨을 쥔 유권자의 지지율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시청자 또한 '좋은 프로그램' 과 '좋아하는 프로그램' 은 엄연히 다르다는 이중의 잣대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다.

대체로 좋은 프로그램은 우리의 의식을 아름답게 변화시키고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우리의 감각을 자극해 마비시킨다.

이 때문에 TV의 안과 밖을 두루 건강하게 유지시키기로 마음먹은 시청자들이 연대해 '북치고 장구쳐야' 한다.

하루 평균 3시간 남짓을 TV보기에 매달리고 있다는 통계를 접하며 그런 소모적인 정력을 오히려 생산적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에 대한 우리의 고민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인간적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춤판은 '무엇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느냐' 는 물음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다.

지금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테크노 물결의 원동력은 자유의지의 확산이다.

그것의 실현을 위해 무의미하게까지 보이는 반복을 그들은 몸짓으로 표출한다.

TV가 바뀌어야 하는 건 말할 나위 없지만 TV를 바라보는 시선도 변화가 필요하다.

누군들 PD로 일하며 한낱 '쓰레기' 를 생산하고 싶겠는가.

TV를 단지 삐딱하게 보면서 오락의 가치를 얕잡아보는 주변의 시선에 대해 불쾌하고 불편했던 기억이 아직 내겐 남아 있다.

방송은 내 젊은날의 숲과 같은 존재다.

그 정열과 혼돈의 숲에서 빠져나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남 얘기하듯 주섬거리고 있는지 한편으로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나 결코 나는 숲을 향해 공허한 나팔을 불어대진 않을 참이다. 앵글이 바뀌면 가까이에서 안 보이던 것까지 볼 수 있다.

떨어져 있기 때문에 오히려 발견할 수 있는 질환을 알려 숲이 썩어가지 않도록 돕겠다는 뜻이다.

내가 스스로 명명한 '프로듀페서' 는 프로듀서(연출)와 프로페서(교수)의 미디에이터(중재자)다.

바보상자로부터 엑소더스(탈출)를 꿈꾸면서 대중문화와 대학문화의 화해를 주선하는 역할이다.

TV가 시간의 도둑 혹은 부질없는 욕망의 하수구가 되지 않도록 감시하고 조언하는 파수병이다.

내가 살아온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숲의 산소요구량을 조금이나마 낮추고 싶은 게 나의 소박한 꿈이다.

주철환<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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