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회담]마주 앉지만 미묘한 시각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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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17일 대국민 담화에는 총선 이후 정국관리의 원칙과 수단이 담겨 있다.

그 핵심은 한나라당을 국정 파트너로서 인정하고, 대화와 협력의 정치를 하겠다는 다짐이다.

金대통령은 이를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民意)라고 강조했다. "여야 어느 쪽도 승자로 만들지 않고 여야가 협력해 정치를 안정시키라는 명령" 이라는 게 金대통령의 인식이다.

여야 협력을 위한 구체적인 수단으로 金대통령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와의 영수회담을 내놓았다. 회담시기도 '가까운 시일' 로 못박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金대통령이 이렇게 나오는 것은 헌정(憲政)사상 첫 상황인 '여소야대(與小野大) 양당구조' 에 빠른 적응을 위해서다. 현 정부의 2단계 개혁 시나리오와 예산을 뒷받침받기 위해선 李총재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러면서 金대통령은 "여야 모두 큰정치를 하자" "여야 모두 큰 도량(度量)으로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관계자는 "정국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李총재도 일정수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 이라고 설명했다.

金대통령은 오랫동안 다듬어온 남북 정상회담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야당과 함께 하는 초당적인 분위기 확산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영수회담의 의제로 남북문제를 먼저 꼽은 것은 李총재의 협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金대통령이 "(남북 대화는)한번에 나 혼자 하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 않다. 지금 성과를 바탕으로 다음 정권에서 더 큰 진전이 있기를 기대한다" 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야당이 문제점이라고 지적한 "현 정권의 남북 대화 독점, 급격한 대북 접근" 에 대한 해명의 성격을 띤 것이다.

이같은 金대통령의 정국관리 구상에 대해 李총재는 원론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여권의 국면전환용.일회용.전시용 회담이 돼선 안된다" 고 말했다. 한나라당 당직자는 "李총재의 발언은 영수회담에 앞서 몇가지 사안에 대해 金대통령의 의중을 확인하고 싶다는 뜻" 이라고 말했다.

그 중에는 인위적 정계개편(의원 빼가기)과 선거법 위반 사범의 표적수사 문제다. 한나라당에선 이 문제에 대해 의심하는 분위기가 많다. "검찰이 선거법 위반자에 대한 수사를 서두르고, 자민련과의 공조 복원을 모색하는 것도 인위적 정계개편을 위한 포석" (李思哲대변인)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李총재로선 영수회담이 1여1야의 양당구도를 확실히 구축할 수 있는 기회다. 따라서 "李총재가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 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관측이다. 때문에 영수회담 개최에는 다소의 진통이 예상되지만, 정국흐름은 영수회담 쪽으로 급격히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김진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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