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허영자 '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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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시장기

죽은 나무도 생피 붙을 듯

죄스런 봄날

피여, 피여,

파아랗게 얼어붙은

물고기의 피,

새로 한번만

몸을 풀어라

새로 한번만

미쳐라 달쳐라

-허영자(62) '봄'

웬 시장기? 어린 날 보릿고개라도 넘어보았던가. 긴 봄날 배고픔이야 한 그릇의 풀죽으로라도 넘길 수 있겠네만 휘발유같이 번쩍 타오르는 허영자의 시퍼런 피의 시장기를 무엇으로 채운다□ 아직도 눈 못감는 저 황진이나 이옥봉의 넋이 몸속에 붙어서 동해 산불처럼 번져오는 것이 보인다. 강물이라도 퍼올려야겠다. 만삭의 물고기 몸을 풀 듯, 미쳐라 달쳐라 불을 꺼야겠다.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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