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욱칼럼] 총선결과 독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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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 헌정사에서 여당이라고 부를 수 있는 최초의 정당은 자유당이다. 이 여당이 처음 참여한 1954년 3대 국회총선거이래 여당이 선거에서 제1당이 되지 못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3대부터 12대 국회까지는 제1당 중에도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절대다수당이었다. 지역주의 성향이 뚜렷해진 88년 13대 총선 때부터 선거 자체로는 여당이 한번도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13대 국회에선 3당 합당을 통해, 14대와 15대 국회 때는 무소속 등의 영입을 통해 국회안정의석을 확보했다.

물론 선거라는 것은 뚜껑을 열어봐야 알 일이다. 그렇지만 현재까지의 각종 여론조사 보고로는 과반수는 고사하고 '여당〓제1당' 등식마저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 이번 총선에 과연 새로운 기록이 보태질지 주목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어느 정당이든 선거에서 과반수를 확보하면 그 당의 승리는 아무도 이의를 달 수 없다. 과반수가 아닌 제1당이 되면 일단 이겼다고는 할 수 있으나 제2당과의 격차가 크지 않고선 취약한 승리, 도전받는 승리일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10석 이내의 격차로 제2당이 되면 사실상 자기네 승리라고 강변하려 들지도 모른다.

야당은 여당의 막강한 관권.금권.신북풍의 프리미엄 속에서 그 정도 의석차라면 사실상 야당 승리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여당도 영.호남의 구조적 지역구 의석격차(65 대 29)를 수도권 승리로 거의 메웠다면 이는 여당의 승리가 아니냐고 할 것이다.

이렇게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의석 격차가 작은, 다시 말해 국민의 뜻이 분명치 않은 선거결과가 가장 바람직하지 않다. 소모적인 싸움이 지속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선 14대(21석)나 15대(16석)에 비해 무소속 당선자가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미 당선되면 어느 당에 입당하겠노라고 공언한 후보도 있지만 무소속 영입만으론 안정의석 확보가 어려울지 모른다. 그렇다면 정당간 공조 모색이 불가피하다.

과연 총선 후 민주당 - 자민련의 공조는 재봉합될 수 있을까. 지금도 민주당은 양당 공조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고, 자민련은 그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는 생물과 같아 선거 때 그 가능성을 부인한다고 해서 끝까지 가능성이 닫혔다고는 말할 수 없다.

문제는 과연 자민련이 얼마나 현재의 세력을 지킬 수 있느냐다. 15대 국회때 50석, 총의석의 6분의 1을 확보했던 자민련이 그 세력을 지키려면 이번 총선에서 45석은 건져야 한다.

만일 결과가 그에 크게 못 미치면 JP의 지도력이 손상돼 혹시 지도부가 양당 공조를 재개하려 해도 당이 잘 움직여지지 않을 것이다. 설혹 현재의 세력을 유지한다 해도 그동안의 앙금과 이해관계 때문에 종전의 공동정부보다는 느슨한 협력관계로 가려 할 가능성 또한 작지 않다.

선거가 끝나면 정부가 정국 장악력을 높이고 야당 일부를 끌어들이기 위해 개혁과 사정을 강화하리란 관측이 나돌고 있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개혁을 가속화하자는 건 어느 정도 명분이 있겠으나 사정의 강화는 필연적으로 여야간 대충돌을 가져올 것이다. 더구나 사정이 정권출범 초기만큼 야당을 위축시키는 효과도 없어 자칫하면 정치적으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이번 선거는 김대중 대통령으로서는 당내 공천권을 행사하고, 관리하는 마지막 총선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총선 후 정국은 이제 다음 대선을 염두에 두고 움직여진다. 총선에서 참패를 당하지 않는 한 유력 주자(走者)가 가시화돼 있는 한나라당은 그 점에서 한 발 앞서 있다.

여당과 제1야당의 협력관계가 개선되지 않고선 우리 정치는 한발짝도 나가기 어렵게 돼 있다. 어느 때보다도 공존의 정치, 상대를 인정하는 정치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대선까지 의식해야 될 여야가 과연 나라를 위해 허심탄회하게 협력에 나설지는 근본적으로 미지수다.

총선에서 이긴 쪽이 먼저 협력의 손을 내밀어야 할 책임이 있다. 상대의 상처를 헤집지 않는 데서 진정한 여야 협력은 시작될 수 있다.

성병욱<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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