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계연구원, 연평해전은 '몸싸움'의 승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9면

지난해 우리 해군이 서해(西海)교전을 승리로 끝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당시 6월 교전 직후 나온 해석은 전자전(電子戰)의 승리라는 것. 예컨대 우리 함정의 76㎜포는 목표물 조준부터 발사까지 전자동으로 이뤄져 일일히 수동으로 조작되는 북한 함정의 기관포를 압도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최근의 한 분석에 따르면 전자장비 못지않게 튼튼한 선체와 기동력도 단단히 한 몫한 것으로 나타났다.

말하자면 몸싸움에서 이긴 것이 교전을 승리로 이끄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한국기계연구원팀이 최근 해군의 의뢰로 고속정의 충돌을 시뮬레이션해 분석한 결과에서도 뒷받침되고 있다.

교전 당시 남북 해군의 함정들은 서로 물고 물리며 치열한 '박치기 전법' 을 구사했다.

총격전이나 포사격도 있었지만 양측이 주로 구사한 전법은 밀어내기 였다.

실제 북한이 입은 피해(1척 침몰.3척 반파 혹은 기동불능)나 남한측의 손실(2척파손.1척 손상)은 밀어내기 따른 충돌의 결과였다.

"선수부를 중심으로 우리 함정들도 구멍 난 곳이 7~8곳에 이르렀습니다. 이 구멍으로 우리 함정들은 배에 물이 들어올 정도의 피해를 입었지만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우리 함정에 받친 북한 함정은 옆구리나 후미가 폭싹 주저앉았을 정도의 타격을 입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번 연구의 한 관계자는 현재의 남북 경비정 성능이라면 10노트 가량의 속도로만 받아도 북한 배들은 꽤 치명적인 손실을 입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분석 결과 선수부 부위에 얇은 철판을 덧댈 경우 큰 감속(減速)없이 유사한 상황에서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철판 덧대기에는 큰 비용도 들지않는 것으로 분석됐다.

남북의 특수한 대치 상황 때문에 백병전과 유사한 해상교전은 추후에도 발생할 가능성이 적지않다.

일부에서는 이 때문에 램(ram)같은 특수충돌장치를 부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탈부착에 따르는 번거로움 등으로 이는 쉽지 않다는 게 이번 분석팀의 견해다.

램은 끝이 뾰쪽한 긴 통나무 같은 모양으로 뱃머리에 부착해 상대 함정을 파손시킬 수 있는 장치다.

근대 이전까지 해전에서는 충돌 전법의 비중이 높아 램 설치나 선체 보강 등 몸싸움을 위한 장치 개발이 활발했다.

대덕단지〓김창엽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