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26억원 세탁후 어디로 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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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과거 사채시장의 '큰손' 장영자씨와 시중 은행이 尹씨 등 사기피의자에게 건넨 수표 중 26억원이 사라지고 尹씨가 은행으로부터 받은 수표 중 30억원이 張씨에게 전해진 것으로 26일 드러나면서 이번 사건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 사기 과정〓검찰에 따르면 구속된 尹씨는 지난해 12월 張씨에게 "1998년 청주여자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중 함께 생활했다" 며 접근했다.

이후 張씨의 서초동 자택을 수시로 방문한 尹씨는 "전직 대통령 아들의 비자금을 구권화폐로 관리하고 있으니 수표와 바꿔주면 돈을 더 얹어주겠다" 고 말해 자기앞수표로 21억원을 건네받았다.

또 尹씨는 鄭모(59.구속)씨와 공모, 지난달 말 S은행 지점장 徐씨에게도 비슷한 수법으로 접근했다는 것이다.

徐씨 앞에서 정.관계 인사 등과 전화통화를 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張씨를 소개해줘 자신이 유력한 인사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에 따라 徐씨는 은행 고객 李모씨와 합의, 李씨 계좌에서 자기앞수표 35억원을 발행해 尹씨 등에게 주었다.

이를 눈치 챈 張씨가 尹씨로부터 30억원을 받아내자 尹씨는 바로 徐씨에게 "張씨가 30억원을 강탈해갔다" 고 말해 은행측이 30억원에 대해 지급정지명령을 내렸다.

張씨는 지급정지를 모른 채 자신의 계좌에 돈을 입금시켰다가 부도가 났고 곧바로 금융가에서 '장영자 수표가 부도났다' 는 소문이 퍼져 수사망에 포착됐다고 검찰은 밝히고 있다.

◇ 의혹〓검찰은 94년 이전 발행된 1만원권(은색 띠가 없음)인 구권화폐가 실제로 뭉칫돈으로 오갔는지 확인해야 한다.

80년대와 90년대 거액의 어음사기사건에 연루돼 누구보다도 돈의 흐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張씨와, 금융계의 현실을 잘 파악하고 있는 은행 지점장 등이 구권화폐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채 담보도 없이 단지 몇마디 말에 의해 수십억원대의 수표를 건넸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증발된 26억원이 어디에 쓰였는지도 추적돼야 한다. 검찰은 26억원대의 수표가 돈세탁이 된 것으로 보면서 이 돈이 자칫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가 정치자금으로 쓰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최민우.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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