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한국특판전 취소 망신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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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22일부터 나흘 동안 열릴 예정이었던 한국 식품 특판 전시회가 지난 18일 돌연 취소됐다. 이 행사는 '2000년 농산물 해외시장 개척사업' 의 일환으로 농수산물유통공사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모스크바 무역관과 공동으로 국고 지원까지 받아 추진한 사업이다.

취소된 이유는 전시 행사를 위해 러시아로 반입하려던 김치.사과.인삼.삼계탕 등 한국 농산품과 전통 식품이 지난 15일 러시아 세관에서 통관되지 않았기 때문.

통관 지체로 행사가 무산된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전시회에 참여하려던 15개 한국 업체들이 안게 된 손해는 물론 한국의 색다른 '맛' 을 기대했던 모스크바 시민들에게도 실망을 안겨주었다.

한국 상품의 이미지 추락도 우려되고 있다.

손해는 이 뿐만이 아니다. 세관 통과에 실패한 한국산 식품 4.5t을 한국으로 되싣고 올 항공편을 잡지 못해 러시아 세관에 1주일 이상 억류되는 바람에 수만달러에 이르는 창고보관료를 물게 됐다. 일부 식품은 장기 보관으로 아예 버려야 할 형편이다.

러시아당국이 밝힌 통관불허의 공식 이유는 "위생검사를 받지않은 채 해당 상품들을 들여오려 해 통관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는 것이다.

그러나 속사정은 다르다. 전시에 참가했던 한 업체관계자는 "전시상품의 통관을 위해선 품목당 약 70만원이 소요되는 품질인증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이를 모른 채 통관절차를 밟다가 생긴 해프닝인 것으로 알고 있다" 고 말했다.

행사를 주관했던 다른 관계자는 "진행을 맡은 모스크바 무역관이 현지 운송대리인인 W사를 통해 검사를 받지 않고 대사관 용품으로 물품들을 통관시키려다 억류돼 망신은 망신대로 당하고 행사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게 됐다" 고 전한다.

유통공사측은 이에 대해 "현지 통관법이 바뀐 것을 모른 채 통관시키려다 생긴 착오" 라고 설명하며 "손해가 있다면 행사 주관을 대행했던 현지 무역관에 배상책임을 묻겠다" 는 설명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 행사에 잔뜩 기대를 걸었던 농림부 관계자는 "아직도 세계 시장을 두드리는 우리의 손놀림이 이처럼 미숙하다는 것은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며 혀를 찼다.

홍병기 기자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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