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나라빚 정말 괜찮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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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나라빚과 '국부 유출' 에 관한 정치 공방이 확대.증폭되고 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참으로 기가 막힌다" 면서 정부 당국에 적극적인 해명과 대응을 지시했고, 이에 따라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 등이 직접 야당 논리를 반박하고 나서는 등 정부.여당과 야당간에 볼썽사나운 대결 양상으로 비화하고 있다.

나라빚은 대외 신인은 물론 국가의 장래와 직결되는 문제다.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의도적으로 축소해서도 안된다. 총선의 정책대결 이슈로 야당이 나라빚 문제를 들고나온 것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논쟁의 전개과정은 여야가 건설적인 정책대안이나 해결책보다는 선거를 의식한 정치 공방에 치우쳐 있어 보기에 안타깝다.

나라빚 문제는 결코 당리당략이나 정략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물론 한나라당이 국가 부채를 4백조원 이상으로 계상한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정부가 채무 보증을 선 90조여원은 그렇다 해도 앞으로 발생할지 모를 국민연금의 잠재적 채무와 공적자금 추가투입 예상액까지 포함한 것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그렇다고 "국제기준상 나라빚은 1백8조원에 불과하고 주요 선진국보다 부채비율이 현저히 낮다" 며 야당주장을 일축하는 정부.여당의 자세 또한 문제가 적지 않다. 어디까지를 국가 채무로 볼 것이냐에 대해 시각 차이는 있을 수 있다. 나중에 국가가 갚지 않아도 되면 그것으로 좋지만 국가 경영을 하는 입장에서는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숫자 공방에 집착하기보다 나라빚에 대한 제대로 된 현실인식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국가 채무의 현실은 실로 낙관을 불허한다. 구조조정에 공적자금은 앞으로 얼마나 더 들어갈지 모르는 밑빠진 독이고, 각종 연금의 재정상태 또한 날로 악화되고 있다.

균형재정 달성을 앞당긴다고는 하지만 이는 세입과 세출을 맞춰 빚이 더 늘어나지 않게 함이 고작이다. 이 상황에서 국제기준만 들먹일 것이 아니라 문제의 심각성을 솔직히 인정하고 체계적으로 나라빚을 줄여나가는 장.단기 대책을 초당적으로 마련해나가는 것이 정부.여당이 취할 자세다.

국내 기업의 해외 매각을 '국부(國富)유출' 로 부각하려는 야당의 시각 또한 문제가 적지 않다. 외자 유치를 통해 해당 기업과 경제 전체의 신인도가 올라가면 모든 자산 가치도 함께 올라간다.

국수주의적 대응은 전체 국부의 감소를 가져오기 십상이다. 나라빚 많은 것이 자랑거리 일 리가 없고, 그 숫자를 둘러싼 여야간 정략적 공방은 경제 전반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킬 우려가 크다.

여야가 건설적인 대안을 놓고 생산적인 정책대결을 펼친다면 나라빚 논쟁이 나라 경제를 망치기는커녕 우리 경제의 대외 신인도를 도리어 올려놓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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