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 3천만달러의 교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1997년 8월 괌공항 사고에 대해 미국 정부도 잘못했다는 미 정부 변호인단의 자인(自認)이 놀랍다. 문화적으로 다른 나라 얘기라지만 우리에게도 시사점이 다양하다.

우선 배상액이 엄청나다. 5명에 1천1백20만달러(1월), 15명에 3천만달러(3월)…. 앞으로도 1백명 이상 남았으니 속보가 잇따를 전망이다.

우리 정부의 한 공무원은 그 놀라움을 "미국엔 감사원도 없나" 로 표현한다. 공무원의 재량권이 부럽고,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직무환경도 경탄스럽다는 뜻이다.

나중에 대한항공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만도 아닐 듯싶다. 그러려면 재판을 끝까지 해야 한다. 중간에 멋대로 거금을 주고, "되받겠다" 하면 대한항공이라고 호락호락하겠는가.

왜 그랬을까. 미국 정부의 의중을 점쳐 보자. "소송을 끌어봐야 돈은 돈대로 든다. '잘못이 없다' 는 정부를 배심원은 쩨쩨하게 본다. 갈수록 미국은 체면만 구기고 유족들 아픔만 키운다." 겉으론 양보하는체, 속으론 돈을 아끼는 한수 앞선 정책이다.

미국 정부가 현명하게 돈을 아낀 사례는 또 있다. 80년대 중반 정부 상대 손해배상 소송의 29%가 "교통안전시설 미흡 때문에 사망.중상 등 중(重)교통사고를 당했다" 는 소송이었고 정부는 41% 패소했다.

10년 동안 배상금이 무려 19배로 뛰었다. 그러자 미 연방도로청은 "교통표지 설치.개선만으로 사망자수 27%, 부상자수 33%, 물적피해 사고 23%를 줄인다" 며 스스로 안전시설 투자를 대폭 늘리고, 각 주(州)정부에 '사고 후 배상보다 사고예방이 훨씬 남는 장사' 라는 사실도 주지시켰다.

요즘 우리 교통안전시설에도 운전자들 비판이 빗발친다. "설치해야 할 곳은 방치, 불필요한 곳에 설치, 형식적으로 설치, 유지관리를 안해 제기능을 발휘 못한다." 그러나 당국은 예산타령뿐이다.

정부를 상대로 재판을 걸면 어떨까. '목포공항사고.포항공항사고 때도 정부 상대 소송은 없었다. 교통사고를 당하면 우리는 보험료 더 받을 궁리만 한다. 그보다 시설관리를 잘못한 정부에 따져야 공항시설이 개선되고, '나중에 물어주기보다 시설 고치는 데 돈을 쓰자' 는 공무원도 생긴다.

음성직 전문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