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밤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그와의 우정을 잊지 못하는 지인들이 속속 장례식장을 찾았다. 제단 맨 앞에 놓인 이명박 대통령의 조화가 눈길을 끌었다. 문득 2007년 대선 과정이 떠올랐다. 좌파에 대한 뉴라이트의 ‘담론 투쟁’이 없었다면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뉴라이트가 공세를 쥐고 전개된 담론 투쟁의 정점에는 2006년 나온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책세상)이 놓여 있다. 이 책의 해방 이후 한국 정치사 부분에 대한 편집과 집필 담당자가 그였다. 1950년대 이승만 정권부터 70년대 박정희 정권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를 일찍이 ‘건국과 부국’이란 말로 정리해낸 학자가 그였기 때문이다. 그의 이론은 해방 이후 역사를 보다 긍정적이고 사실적으로 보는 해석의 원천을 이룬다.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그를 역사학에 밝은 정치학자로 평가했다. 이념보다 사료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외국 이론을 수입해 연역적으로 대입하는 방식과 김 교수의 연구는 다른 것”이라며 “반백 년을 채 못살았지만 업적을 보면 일백 년 이상을 산 사람”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의 좌편향을 바로잡는 데 기여한 고인은 우편향에 대해서도 관대하지만은 않았다. 수구 보수와는 선을 분명히 그으려고 했다. 뉴라이트가 정치운동화하는 것을 누구보다 경계한 인물도 그였다. 그는 대한민국의 보수세력이 보다 전문적인 이론과 품격을 갖추길 바랬다. 진보 좌파 진영과의 대화와 소통을 위해 노력한 인물로도 기억돼야 한다. 이날 빈소를 직접 찾은 진보 성향의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화가 가능했던 보수 측 학자”라고 했다. 그의 꿈은 이제 후학의 몫이 됐다.
배영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