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적폐지 힘들다…대통령 '검토필요' 발언후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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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지난 13일 전직 대통령과의 만찬에서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본적(本籍)을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고 언급함에 따라 법무부와 행정자치부 등 관련 부처가 법률검토 작업에 들어가는 등 술렁이고 있다.

호적법 제15조는 호적에 본적과 ▶호주(戶主) 및 가족의 이름▶본(本)▶호주와의 관계▶가족관계의 원인▶호적변동 사유▶타가의 본적(타가에서 입적한 경우) 등을 기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같은 법 제49조는 출생신고서에 ▶부모의 성명▶본 및 본적▶출생 일시와 장소▶입적할 가(家)의 호주.본적 등을 표시토록 하고 있다.

金대통령의 의중이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으나 호적제도 자체는 현행대로 유지하면서 가족관계만 알 수 있도록 하고 본적 표시란을 없애 어느 지역 출신인지 알 수 없도록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신생아의 경우 처음부터 부모의 본적 표시를 생략한 채 출생신고를 함으로써 출생지만 알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지역감정의 출발이 출신지역을 따지는 데서 비롯됐다는 판단 아래 개인의 출신지역을 다른 사람이 알 수 없도록 원천봉쇄하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본적을 없애는 것이 호적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중요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지역감정 타파라는 목적도 달성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본적 개념이 없어지면 민법의 상당 부분을 손질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호적법은 물론 상속법 등 관련 법률을 대폭 수정해야 한다. 예컨대 '병적지는 본적으로 한다' 는 병역법 조항도 손을 봐야 한다.

법원행정처 윤성원(尹成遠)법정심의관은 "우선 호적등본.초본을 발급하면서 본적란을 가리고 발부하는 방안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며 "그러나 호적제도 자체가 존재하는 한 본적의 의미는 계속 유지될 수밖에 없을 것" 이라고 말했다.

본적란을 삭제한다 하더라도 가족관계와 이들의 출생지 등이 서류에 상세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본적이 없어지면 엄청난 양의 호적부를 이사 다닐 때마다 주소지로 옮겨야 하는 만큼 관리 문제도 만만치 않다.

호적부는 주민등록과 달리 전산화 작업이 이뤄지지 않아 수작업을 통해 정정.발급되고 있기 때문에 전국 호적의 본적 표시를 삭제하는데는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법원행정처와 행정자치부는 전국 호적 전산화작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다.

유림(儒林)과 일부 사회단체는 본적란 폐지를 '뿌리' 를 부정하는 것으로 규정, 강력하게 반발할 것이 틀림없어 호적법 개정안이 마련된다 하더라도 국회 통과까지는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金대통령이 지역감정 해소를 위한 고육지책으로 본적 폐지 방안을 거론했으나 현실적으론 힘들다는 게 법조계의 전반적인 반응이다.

김상우.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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