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경제의 그림자…사회 양극화 악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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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대기업에 근무하다 1998년 구조조정 바람 속에 반 강제적으로 직장을 떠나야 했던 金모(33)씨. 그는 요즘 신흥 부유층이란 소리를 듣는다.

그는 절치부심 끝에 99년 1월 향수 판매 전문 인터넷 쇼핑몰을 개장, 대기업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金사장은 이제 사업을 사이버 무역 쪽으로 확대하고 회사 주식을 코스닥시장에 등록할 계획도 짜고 있다'주변에서는 그의 회사가치가 이미 10억원대에 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H그룹 계열사에 근무하는 李모(38)과장. 구조조정의 회오리 속에서도 살아남아 주위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지만 요즘은 불안하기만 하다. 외환위기 이후 깎였던 급여가 겨우 예전 수준을 회복했지만, 연봉 3천2백만원으로는 커가는 두 아이의 교육비도 벅찰 정도다.

우리 경제구조가 인터넷.정보통신기술과 벤처기업 중심의 디지털 경제로 빠르게 전환하면서 계층간.산업간.지역간 격차가 심해지는 이른바 '디지털 양극화' (Digital Divide)문제가 핵심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디지털 경제로 돈과 사람이 몰리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난해 4분기중 소득 상위 20% 근로자와 하위 20% 근로자간 소득 격차가 5.57배로 벌어졌다는 최근 통계청 발표는 이런 흐름을 보여 주는 것이다.

최근 통계청이 내놓은 '도시근로자 가계수지동향' 에 따르면 지난해 소득 상위 20% 근로자와 하위 20% 근로자간 소득 격차는 5.49배, 소득 불균등 정도를 지표화한 지니계수는 0.32로 79년 통계 작성이 시작된 이후 최악의 상태를 보였다.

산업 쪽에서는 격차가 더욱 뚜렷하다. 코스닥시장의 주가 폭등으로 시중 여유자금과 우수 인력이 벤처기업 쪽에 집중되면서 '굴뚝 산업' 으로 불리는 전통 제조업체들은 자금.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디지털 경제는 지역간 격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반적으로 지방 경기가 수도권보다 못한 가운데 지방의 유망 벤처기업들이 보다 나은 사업환경과 돈.인력 확보를 위해 서울로 옮겨가고 있다. 부산에서 활동해온 ㈜인트빔.이크시스 등 벤처기업들이 서울 테헤란 밸리 인근으로 이주했거나 옮길 계획이다.

노동연구원 허재준 연구위원은 "미국의 사례에 비추면 우리나라도 디지털경제 진전에 따른 양극화 문제가 갈수록 심화될 것" 이라고 전제, "정부가 적절한 재교육과 복지정책을 마련하고 디지털경제의 수혜자인 기업들이 과실을 함께 나누도록 유도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정부도 디지털 양극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인력개발.지역 균형발전 등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이헌재(李憲宰)재정경제부장관은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은 국제무대에서 우리 경제가 살아남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선택" 이라고 전제, "다만 그 과정에서 낙오자를 최소화할 '디지털 안전망' 구축에 적극 나서겠다" 고 밝혔다.

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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