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장관 지방나들이 잦은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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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장관들의 잦은 지방 나들이가 시비가 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이뤄지는 고관들의 지방 행차와 현지에서의 현안 해결 약속은 결국 여당 후보를 측면지원하는 관권개입이 아니냐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10여명의 장관급 인사들이 이런 저런 이유를 붙여 지방을 돌며 각종 지원을 공언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최인기(崔仁基)행정자치부 장관의 경우는 전국 각지를 돌며 장애인 체육대회 예산을 전액 지원하겠다는 등 각종 숙원사업 해결을 공약했다는 것이다.

최근 부산에서는 중등교원 인건비 부담액 50%를 정부가 지원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정부 방침과도 배치된다는 게 야당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崔장관을 비롯해 교육부.건설교통부.해양수산부 장관, 금감위원장.관세청장 등은 자신들의 지방 나들이가 초도 순시 차원의 의례적인 것이라고 해명한다. 또 별도의 선심성 공약을 한 바 없고 이미 예산에 반영된 것을 강조한 것에 불과하다고 변명한다.

행자부는 장관이 총선에 임박해 지방 순시를 하면 오해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기 때문에 서둘렀을 뿐이라면서 광역자치단체에서 1백억원 안팎의 숙원사업을 약속하는 것은 오랜 관례라고 주장한다.

한편 지방에 산하기관이 없는 기획예산처 진념(陳稔)장관은 해당지역의 지사나 부지사의 초청에 응한 것이며, 대전을 방문한 것은 구조조정을 점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관련 장관들의 해명처럼 지방 나들이가 의례적인, 선거와 무관한 행정 행위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액면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선거 때만 되면 고관들의 지방 나들이는 부쩍 늘어났다.

단순한 '시위' 에 불과했건 어땠건 갖가지 이유를 붙여 지방에 나타났고 보고회니 간담회니 하며 자리를 만들어 여당 후보를 위한 분발을 촉구했던 사례들을 우리는 수없이 기억한다. 그리고 관권개입 시비에 부대낀 노고는 정권에 대한 충성도를 가늠하는 잣대가 됐고 공무원들의 지방 나들이는 차관, 국.과장 간부로 파급되기 일쑤였음도 잘 알고 있다.

정부.여당이 "우리는 과거 정권과 다르다" 고 우기지만 별로 공감이 가지 않는다. 왜 하필이면 이때 10여명의 장관급 고관들이 지방을 돌며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는가.

이미 수많은 선심성 예산집행과 공약으로 신종 관권선거 시비가 일고 있다. 경기도지사의 경우는 여당 후보 행사에 참석해 한 지지발언으로 피소된 마당이다. 장관의 지방 나들이는 윗사람의 눈을 의식한 하위 간부들로 이어져 본격적인 관권 개입으로 확산된다는 데 더 큰 문제의 소지가 있다.

장관들은 더 이상의 혼탁과 과열, 선거 후유증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외밭에서 신발끈을 매지 말라' 는 속담을 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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