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제5원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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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만물이 물.불.공기.흙 네가지 원소로 이뤄졌다는 4원소설을 믿었지만, 하늘의 천체들은 더 고귀한 원소로 만들어졌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제5원소' (quintessence)를 상상했다.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 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2천년 후의 대과학자 뉴턴에게도 믿음의 대상이었다. 뉴턴은 '에테르(ether)' 란 물질이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어서 빛의 전파를 위한 매체 노릇을 한다고 믿었다. 1881년 마이켈슨과 몰리의 실험으로 에테르의 존재는 비로소 부정됐다.

몇년 전부터 천문학자들이 진공 속에서 새로운 물질을 찾기 시작하고 있다. 이 물질은 다른 물체와 접촉해도 아무 작용을 일으키지 않고 투과(透過)해버리기 때문에 일반적 관측방법으로 접근할 수가 없다. 질량만 있을 뿐이다. 제5원소와 에테르의 부활인가.

'흑질(dark matter)' 또는 '윔프(weakly interacting massive particle)' 라 불리는 이 물질의 얘기가 나온 것은 성운(星雲)의 운동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성운의 회전속도와 팽창속도로부터 구심력의 크기를 계산하고 그만한 중력을 일으킬 성운의 총 질량을 추산할 수 있다.

그런데 관측과 추정이 가능한 모든 천체와 성간물질의 질량을 합해도 필요한 질량의 5분의1이 안된다. 그래서 지금까지 관측이 안된 이상한 물질이 나머지 중력을 일으키고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된 것이다.

1930년대부터 제기된 이 문제의 해답을 찾았다는 발표가 지난달 나와 천문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이탈리아 로마대학의 연구팀은 인터넷 사이트 (http://www.lngs.in

fn.it)에 올린 보고서에서 지난 3년간의 작업으로 흑질의 흔적을 찾았다고 주장했다.

흑질 입자가 일반물질과 간혹 일으키는 충돌을 검출해 계절에 따른 빈도 차이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공전운동에 따라 흑질 속을 움직이는 지구의 속도가 바뀌는 것을 이 검출데이터가 보여준다는 것이다. 1백여년 전 마이켈슨-몰리 실험과 같은 원리란 점이 흥미롭다.

현대과학 최고의 업적이라며 흥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실험결과가 아직 충분치 않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흑질이 우리가 아는 우주와 다른 차원의 공간에 있는 대칭물질(mirror matter)이라고 보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로마대의 실험은 애초에 성립도 되지 않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연철학은 합리적이긴 하지만 경험성이 부족하다 해서 근대과학과 차별됐다. 그러나 현대과학의 경험이 더 확장되면서 제5원소의 개념에 다시 접근하는 것을 보면 자연과 우주의 신비 앞에 인간의 경험이 너무 초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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