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반항아' 매케인이 남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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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미국 언론에 '타이타닉 화요일(Titanic Tuesday)' 이라고 묘사됐던 13개주(공화당) 예비선거가 끝났다. 마지막 승부를 걸었던 매케인 상원의원(애리조나)은 끝내 타이타닉처럼 침몰하고 있다.

이제 그의 퇴장이 임박한 시점이다. 그가 설령 부시의 러닝메이트가 된다 해도 더 이상 주연이 아니다. 관객들은 눈을 고어-부시의 진검승부쪽으로 돌리고 있다.

매케인이 백악관 도전을 선언한 것은 지난해 4월 14일. 레이스는 1년도 못돼 끝나고 있지만 세기의 전환점에서 미국인 앞에 등장했던 매케인이란 존재는 미 정치사에 신선한 충격과 따뜻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우선 그는 미국의 잠재적 지도자군(群)이 얼마나 큰 지를 증명해 보였다. 지난해 경선출마를 발표했을 때만 해도 그는 당내에서 거론되던 10여명 가운데 한명에 불과했다. 전국 지지도도 겨우 1~2%였다.

하지만 그는 이미 국가 지도자의 필수조건을 갖춘 사람이었다. 해군 소위 계급장을 달자마자 월남전 참전을 자원했던 애국적 용기, "먼저 나가라" 는 월맹의 유혹을 뿌리치며 동료에게 석방을 양보했던 영웅적 행동, 별 연고가 없는 애리조나에서 상원 3선을 기록한 실력….

그는 커튼 뒤의 준비된 후보였던 것이다. 매케인의 실험이 끝나가는 지금, 미국의 어느 곳에선 제2, 제3의 매케인이 4년 뒤를 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매케인류(類)의 정치인들은 식품점을 채우는 미주가효(美酒佳肴)처럼 미국의 지도자군을 풍성하게 하고 있다.

매케인은 신념을 실천하는 소신을 보여주었다. 그는 돈-로비스트-부패정치인이라는 철의 삼각지대를 뚫고 들어가려 했다. 그가 정면으로 들고나온 선거자금 개혁안은 미국인들로 하여금 정치자금 문제를 다시 한번 고민하게 만들었다.

당의 기득권층에 과감히 칼을 들이댔던 '반항아' 매케인은 당의 포옹을 얻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부시가 당내 기독교 보수파의 지지를 끌어내려 인종차별을 고집하는 밥 존스 대학에 갈 때 그는 가지 않았다.

그의 유세버스의 이름은 'straight talk express' 다. 매케인은 석양에 서 있지만 그가 남긴 솔직한 얘기들(straight talks)은 길게 메아리를 남길 것 같다.

김진 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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