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만 공룡 수도권] 애매한 법규 틈타 "짓고 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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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전문가들은 정부의 허술한 토지관리 정책과 자치단체의 '팽창욕심' 이 겹쳐 수도권 '묻지마 개발' 이 초래됐다고 지적한다.

준농림지가 단적인 예. 현재 수도권에 무분별하게 들어섰거나 짓고 있는 아파트 입지는 대부분 준농림지역이다. 도시 기반시설이 없더라도 땅만 확보하면 손쉽게 아파트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제도의 허점〓정부가 토지 용도지역을 10개 지역으로 구분.관리할 때는 난개발의 문제가 크게 대두하지 않았었다.

정부가 93년 8월 국토이용관리법을 전면 개정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때 용도지역을 도시지역과 준도시지역, 농림지역과 자연환경보전지역(보전 중심), 준농림지역 등 5개로 단순화했다.

문제는 개발할 곳과 개발 못할 곳 사이에 끼인 준농림지와 준도시지역에서 생겼다. 준농림지역은 개념도 '보전을 주로 하되 개발이 허용되는 곳' 으로 애매하게 규정됐다. 편법 개발의 단초가 된 것이다.

준농림지 개발은 절차도 간단했다.계획을 수립.심의.승인받는 데 수년씩 걸리는 '도시기본계획' 을 피할 수 있어 지방자치단체.개발업자.토지소유자는 당연히 비용 적게 들고 민원에도 대처하기 쉬운 준농림지를 단타성으로 개발해 이익을 챙긴 것이다.

도시지역은 도시계획법에 의해 지역 특성과 여건에 맞는 구체계획이 있어야 개발이 가능하다.

이렇다 보니 업자가 사업승인을 신청하면 지역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사업 자체의 법적하자만 없으면 허가를 내주고 있다. 개별사업간 조정.통합은 아예 고려되지 않는다. 특히 준농림지역은 개발 상한선을 3만㎡에 3백가구 미만으로 설정, 소규모 개발만 허용한 것도 난개발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 '국토이용계획변경(國變)' 이 문제다〓지난해까지 준농림지역에서 3백가구 이상 아파트를 건설할 경우 국토이용계획 변경(국변)을 통해 준도시지역으로 용도를 바꿔주었던 법규도 '묻지마' 개발의 한 원인.

시장.군수가 '국변' 을 허용할 수 있는 규모는 15만㎡까지. 특히 건설교통부 장관이나 시.도지사가 '국변' 을 할 경우 국토이용계획심의회의 등의 심의를 거쳐야 하나 시장.군수는 심의기구를 거치지 않고 이를 허용할 수 있어 큰 문제다.

그동안 건설업자들이 앞다퉈 준농림지를 사들여 준도시지역으로 용도변경한 이유는 준농림지에서는 아파트를 3백가구까지만 지을 수 있어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준도시지역의 용적률이 2백%로 준농림지의 2배여서 20층 이상 고밀도로 아파트를 지을 수 있었다.

건교부에 따르면 1994~98년 '국변' 을 통해 준농림지역을 준도시지역으로 용도를 바꿔 지은 아파트는 전국적으로 4백42건, 25만가구. 면적으로는 1천2백38만㎡나 된다. 이 중 경기도가 1백83건, 6백44만㎡로 절반이 넘는다.

◇ '국변' 기준 상향조정 효과 있나〓건교부는 지난달 '국변' 을 통한 준농림지 개발기준을 1천5백가구(면적 10만㎡)이상으로 뒤늦게 강화했다.

그러나 안건혁(安建爀)서울대 교수는 "1천5백가구 정도면 중소건설업체 몇곳만 모이면 쉽게 개발이 가능하고 대기업들엔 이 정도 규모는 부담이 되지 않는다" 며 "구체적인 개발계획을 법제화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고 말했다.

경기개발연구원 이상대(李相大)박사는 "1백만㎡이상 규모의 신도시에서도 도시자족 기능 등을 제대로 갖추기 어려운 상황을 볼 때 10만㎡는 여전히 작은 규모" 라고 진단했다.

정재헌 기자

<시리즈 자문위원>

▶安建爀 교수(서울대.도시설계)

▶元濟戊 교수(한양대.교통)

▶李景宰 교수(서울시립대.환경)

▶金京煥 교수(서강대.도시경제)

▶曺周鉉 교수(건국대.부동산)

▶權寧德 박사(서울시정개발연구원)

▶李海鐘 박사(경기개발연구원)

▶金龍河 박사(인천발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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