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의사윤리 '도마위에' 올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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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의학 연구자의 윤리문제가 미국 언론의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어 국내 의료계에도 타산지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논란은 지난해 9월 펜실베이니아의대 임상시험에 참여한 제시 겔싱어(18)군이 사망하면서부터 비롯된다.

간에서 암모니아 등 독성물질을 분해하는 효소가 선천적으로 부족한 희귀병을 앓고 있던 겔싱어군이 효소를 합성하는 유전자를 주입하는 유전자치료를 받다 숨졌다.

문제는 임상시험 동의를 받기 전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는 것.

병원측은 예기치 못한 급성호흡부전증을 이유로 들었지만 전문가들은 유전자 주입에 사용한 바이러스의 독성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현재 펜실베이니아의대 임상시험은 전면 중단됐으며 상원에서 진상조사를 위한 청문회가 열리고 있다.

실험결과의 조작도 도마 위에 올랐다.

남아공 위타터스란드대 연구진이 1999년 미국임상암학회에서 발표한 고용량 항암화학요법후 조혈모세포이식술의 치료결과가 조작된 것으로 밝혀진 것.

고용량 항암화학요법후 조혈모세포이식술은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병원에서 시도되고 있는 새로운 암 치료술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치료의 대상자는 유방주위 10개 이상의 림프절로 암세포가 퍼진 중기 이후 유방암 환자들이다.

미국에서만 1만2천여명이 보통 용량보다 서너배 많은 항암제를 투여받은 뒤 파괴된 정상골수세포를 되살리기 위해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았다.

문제는 지금까지 이 치료법이 이론적으론 훌륭하지만 실제 환자의 생명을 연장했는지를 밝힌 연구결과는 없었다는 것. 그러나 남아공연구진이 1백54명의 유방암환자를 대상으로 5년 생존율을 조사한 결과 기존 치료법으론 35%가 사망했지만 고용량 항암화학요법후 조혈모세포이식술을 받은 그룹은 17%로 반감되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연구자에게 불리한 결과를 의도적으로 폐기했다는 내부자의 고발이 제기되면서 고용량 항암화학요법후 조혈모세포이식술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시작됐다.

이 연구를 주도한 베조다박사는 "학회에서 좀더 그럴듯한 연구결과를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된 실수" 라며 조작사실을 인정했다.

윤리문제를 둘러싼 잡음은 전세계 의학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잡지로 평가받는 미국의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도 예외가 아니다.

NEJM편집장 마르시아 앵겔박사는 최근 이 잡지가 다국적 거대 제약회사로부터 연구비 지원을 받은 연구논문 19편을 게재한 사실을 시인하고 공식사과했다.

앵겔박사는 유방삽입 실리콘의 부작용을 밝혀내 1997년 타임지에 의해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25인의 인물중 하나로 선정된 바 있다.

문제가 된 논문들은 신약의 효능과 부작용을 밝힌 연구논문으로 글락소웰컴.머크.화이자.노바티스 등 굵직굵직한 제약회사들이 모두 망라돼 있다.

비록 이들 연구논문의 결과에서 조작된 흔적이나 증거는 없지만 제약회사의 입김이 반영될 개연성이 있다는 점에서 미국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국내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비록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연구과정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시스템이 미국보다 훨씬 허술하기 때문. 전문가들은 "유전자치료등 첨단치료법의 임상시험과 신약허가 과정에 객관적이고 투명한 시스템이 도입돼야하며 허위결과를 발표한 의료인에 대해 면허취소 등 강력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고 강조했다.

홍혜걸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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