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 한류 열풍의 부작용 경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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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한국의 가수.탤런트.영화배우들이 동남아 지역에서 인기가 매우 높은 한류 열풍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아마도 영화 '쉬리'가 성공하고 텔레비전의 몇몇 드라마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이 결과 동남아 국가를 중심으로 한국의 대중 스타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보는 시각은 대조적이다. 우선 한국의 대중문화가 동남아에 전파됨에 따라 우리나라의 위상도 높아지고 외화 획득에도 일조한다는 긍정적인 시각이다. 연예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우리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취약성을 고려해 볼 때 이러한 성과는 이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뤄낸 값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수익성이 낮고 인기 스타를 관리하는 경영방식도 후진적이다. 얼마 전 그룹 가수가 무리한 스케줄을 소화하다가 과속으로 숨진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현재와 같이 연예인을 관리하는 방식이 지속되는 한 이러한 사고를 예방할 방법이 없다. 연예인 인기의 수명이 점차 단축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연예인이나 소속사는 인기가 지속되는 동안 이들 연예인을 혹사해서라도 '단기간'에 '이윤 극대화'를 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몸값을 스스로 관리하는 대부분의 연예인은 '수주(demand)'가 있는 경우 언제든지 이에 응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유명세가 붙었다 하면 온갖 프로그램에 겹치기 출연해 소비자들의 흥미를 반감시키고, 자기계발에 소홀히 해 품격 높은 연기를 기대할 수 없게 되고, 그 결과 시장에서 도태되게 마련이다.

이는 소유주.대리인 간의 문제가 잘못 작동함을 의미한다. 기업의 경우 소유주가 회사의 경영을 전문가(대리인)에게 맡길 때, 대리인이 해이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게 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 예를 들어 고액의 연봉보다 연봉은 적으나 경영성과에 따라 스톡옵션을 주는 제도 등이 이에 해당한다. 또한 대리인의 인적자본이 하락하는 것을 염려해 그가 최선의 환경에서 능력을 발휘하도록 배려하고 대리인을 '혹사'하지도 않는다. 소유주가 자비로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장기적으로 이윤 극대화를 꾀하기 위해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소유주인 연예산업이 대리인인 연예인을 '혹사'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소유주.대리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몇몇 연예인들이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 작품이나 CF에 선별적으로 출연하고 대중매체에 나오는 횟수를 조정하는 것은 우리나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발전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 보다 질 높은 연예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다. 즉 연예인과 소속사는 소비자를 식상하지 않도록 하는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한류 열풍의 부정적인 측면은 제조업 공동화 문제다. 즉 연예인들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질수록 이들 업종에 종사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이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의 직업 선호도 조사도 이런 추세를 보여 주고 있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2003년에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제의를 받은 사람 3만2800명 중 39.9%가 근로조건의 불만족으로 취업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류 열풍이 이런 성향을 증폭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연예인들의 소득이 많아질수록 이에 대한 정보가 쉽게 대중에 알려진다. 그 결과 제조업, 특히 중소기업에서 일하기를 기피하는 현상이 심화할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유명 연예인들이 해외에서 아무리 많은 외화를 벌어들인다 하더라도 이것이 제조업 공동화를 초래한다면 부정적인 측면이 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반도체.전자.자동차.조선.철강.화학산업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극소수의 나라에 속한다.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일본만이 이에 속한다. 이들 산업은 수출의 효자 종목으로 내수 침체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를 유지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규모는 이들 산업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디지털시대에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대중에 즐거운 여가 기회를 제공한다면 이의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이 산업이 대중을 드라마 중독증에 빠뜨리게 하고 제조업에서 일하기를 꺼려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한류 열풍의 부작용을 심각하게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한류 열풍에 들떠있는 동안 우리의 경쟁 상대국은 한국을 따돌리고 세계시장에서 비교 우위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며, 이 결과 한국의 국가 경쟁력은 점차 약화돼 회복이 불가능한 국면에 달할 수도 있다. 한류 열풍이 경제.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심각하게 생각해 볼 시점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김재원 한양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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