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는 인간시장"…英 BBC 방송 폭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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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2만달러(약 2천2백만원)만 주시면 원하는 아이를 영국에 있는 당신집까지 '배달' 해 드립니다. " 루마니아의 한 아동매매업자가 신분을 숨기고 잠입한 BBC의 여기자 수 로버트에게 한 말이다.

루마니아에서는 14만여명이나 되는 어린이들이 고아원에 수용돼 팔려가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BBC가 4일 폭로했다.

극심한 경제난으로 고아원에 아이를 맡겨둔 채 연락을 끊어버리는 부모들이 급증하고 있고, 이 때문에 아이들은 한명당 2만달러에 거래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고아원에 맡겨진 아이들의 1% 정도만이 부모가 없는 고아들이라고 BBC는 보도했다.

일단 계약이 체결되면 아이는 정부가 발행하는 각종 문서와 함께 수주일 안에 입양을 원하는 외국인의 집으로 보내진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같은 아동 매매가 당국의 묵인 아래 자행된다는 점이다. 버림 받은 아이들이 루마니아 법에 따라 '국가 소유' 로 인정돼 마음대로 처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BBC는 고아원을 운영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경찰간부나 고위관료들과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 이들이 어떤 불법행위를 해도 적발되는 일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불과 서너시간만 교외로 나가면 이같은 '아동매매숍' 들이 널려 있다.

로버트 기자는 자신이 이곳을 걸어다니는 동안 여러 사람이 다가와 "아이를 사려고 하느냐" 는 질문을 해왔다고 폭로했다.

그녀는 "겨울철에 먹고 살기가 힘들어 두 아이를 맡겨놓았다가 다시 찾으러 왔으나 아이들은 이미 사라져버렸다" 고 눈물짓는 부부도 만났다고 밝혔다.

BBC는 또 이들 아동들이 열악한 수용시설 등 때문에 극심한 영양결핍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방의 한 고아원 직원은 "전국적으로 수천명이 '고아산업' 에 종사하고 있다" 고 말했다.

아동매매업자인 한 여성은 "현재 60명의 아이를 데리고 있다" 며 "원하는 아이를 수주일 안에 어디든 보내준다" 고 말했다.

이 여성은 또 "필요하다면 (친부모의)사인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고 했다.

중개업자의 손을 거치지 않고 자녀를 팔려는 부모와 입양을 원하는 사람과의 '직거래' 가 성사될 경우엔 매매가격이 1만여달러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로버트 기자가 길거리에서 만난 한 부부는 "8남매 중 여섯명을 고아원에 보내고 두명만을 키우고 있다. 1만1천달러를 내고 이 가운데 한 아이를 사가라" 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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