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뿌리가 바뀐다] 1.권력이 '마우스클릭'에서 나올까-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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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정보화는 기존 권력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권력이 컴퓨터의 마우스와 네트워크에서 생겨날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총칼을 앞세운 기존 권력자원이 중요한가.

나의 생각은 적어도 당분간 기존 권력자원의 중요성은 지속될 것이고, 네트권력의 출현이 가능하더라도 시간이 걸릴 것이며, 네트권력이 기존 권력의 대체 또는 대항세력으로 등장할지, 아니면 기존 권력을 강화하며 등장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보기술의 '민주적 가능성' 에 주목해 정보의 생산ㆍ유통ㆍ소비 과정에서의 거래비용이 감소하고, 인터넷 등을 활용한 정치적 사안에 대한 토론과 숙의의 가능성 확대 등을 통해 동맥경화증에 걸린 기존 정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반대로 정보기술이 지니는 '감시의 가능성' 에 주목해 전체주의적 통제사회의 도래를 주장하는 입장도 있다.그리고 정보화가 가지는 사회적 불평등성과 정보의 과부하(過負荷)에 따라 발생할 민주주의의 후퇴를 예견하는 입장도 있다.

하지만 정보기술은 '양면의 칼' 이다. 기술 그 자체가 정치적 결과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정보화가 이뤄지는 정치사회적 맥락이 정치적 결과를 결정짓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정보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되는 것이다.

권력자원이 되는 정보는 세 가지로 나뉜다. 대가 없이 유포되는 '자유정보' 와 금전적 보상을 위해 기업이 생산ㆍ유통하는 '상업적 정보' , 그리고 비밀이 유지돼야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기존 권력이 장악한 '전략적 정보' 가 그것이다.

어떤 정보를 어떤 형태로 생산ㆍ유통할 것인가는 여전히 기존 권력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네트에서도 기존 권력관계가 재생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네트권력의 출현에 시간이 필요하고, 어떤 형태로 구체화할 것인지를 확정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존재한다.

우리가 정보화를 어떻게 수용하고 활용할 것인지에 따라 민주적 잠재성이 더 발휘될지, 아니면 감시와 통제의 잠재성이 더 발휘될지가 결정될 것이다.

분명한 일은 정부.정당.시민사회.시장.시민 등 우리 모두가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그 방향이 달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기존 정치 틀 및 정치규칙에 따라 기존 정치관행과 권력관계를 바꾸려면 엄청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하지만 새롭게 제시된 방안과 공간을 올바르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보다 나은 정치와 권력의 재편을 이뤄낼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이를 적절한 방식으로 활용ㆍ발전시키지 못하면 조지 오웰의 '1984' 적인 통제사회의 모습 또한 충분히 상정할 수 있다.

정보화 자체가 권력을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 네트권력의 출현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그리고 기존 권력의 강화를 가져올 감시와 통제를 증대하는 네트권력의 출현이 아니라 기존 권력에 대항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네트권력의 출현을 위해서는 기존 권력자원의 토대를 네트를 통해 끊임없이 약화하는 시민사회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유석진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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