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명함 어찌할까? 미국선 지갑에, 일본선 테이블 위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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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호 22면

‘명함 크기만 하다’.
새로운 정보기술(IT) 기기가 선보일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그만큼 작다는 의미다. 명함은 대부분 가로 90㎜, 세로 50㎜(또는 55㎜) 크기다. 한 손에 쥘 수 있는 작은 크기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의 문화적 차이는 ‘작지’ 않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여성의 명함이 남자용보다 가로 길이가 길다. 프랑스 등 유럽은 그 반대다.
이름·직위 등이 들어가는 기본은 비슷하지만 강조점이 다르다. 서양에서는 명함이 자신을 알리는 도구다. 회사는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동서양이 다른 명함 풍습

이 때문에 회사 로고는 우측이나 좌측 상단에 작게 들어가고 이름이 더 크게 들어간다. 반면 동양에서는 회사와 자신을 일치시키기 때문에 회사명을 더 눈에 띄게 만든다. 아예 서양에서는 명함을 비즈니스용과 사교용(Calling Card)으로 나눠 들고 다니기도 한다. 비즈니스용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명함이다. 사교용 명함은 파티에 참석하거나 인사차 가정집을 방문했을 때 사용한다. 사람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름과 주소만을 필기체로 적는다.

또 서양에서는 개인의 직책이나 직함 등이 여럿일 때 주요한 것 1~2개만 쓴다. 너무 많이 쓰는 것은 자신을 과시한다고 생각해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학위나 전문직함을 빼곡하게 적어 넣는다. 직함을 많이 넣을수록 권위 있다고 여겨서다. 그래서 중국 명함은 대체로 복잡하다. 황금색이 지위와 번영을 나타내기 때문에 글씨를 황금색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인도와 중남미에서도 학위를 꼭 표시한다.

명함을 주고받는 에티켓에서도 차이가 있다. 명함은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나이 어린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 방문객이 직원에게 먼저 명함을 건네는 것은 동서양이나 같다. 서서 명함을 주고받고 명함을 줄 때는 상대방이 읽을 수 있는 쪽으로 향하는 것도 그렇다. 명함을 소중히 다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명함을 주고받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서로 알게 되고 나서 교제를 계속하고 싶을 때 하는 하나의 행위다.

따라서 비즈니스 관계가 아니면 처음 본 사람에게 명함을 내미는 경우는 거의 없다. 충분히 얘기하고 나서 연락처가 필요하다 싶으면 그제야 명함을 꺼낸다. 특히 파티에서 명함을 돌리는 것은 파티를 초청한 사람을 무시하는 행동으로도 비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오른손으로 명함을 주고받으면 되고, 장갑을 끼고 주고받아도 무례한 행위가 아니다. 명함을 받고 나서 주머니나 지갑에 넣어도 괜찮다.

반면 동양의 명함 예절은 엄격한 편이다. 명함을 잘못 주고받았다가는 사업을 그르칠 수도 있다. 특히 일본은 더하다. 일본에서는 ‘명함=명함 주인’이다. 존경과 경외심을 갖고 명함을 취급해야 한다. 서양과 달리 미팅 전에 명함을 교환한다. 항상 두 손으로 주고받아야 한다. 명함을 받을 때는 ‘감사합니다’고 인사를 하며 받은 명함을 2~3초간 봐야 한다. 그러곤 상대방의 이름과 소속 부서, 직함 등을 따라 읽어야 한다.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반드시 명함을 준 상대에게 물어봐 확인한다.

미팅이 끝날 때까지 명함을 주머니나 지갑에 넣어서는 안 된다. 명함을 카드처럼 가지고 놀아서도 안 된다.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는다. 상대의 이름이 생각이 안 나 명함을 몇 번씩 힐끗 보는 것은 실례다. 그래서 명함을 받고 나서 암기하듯 읽어 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상대 앞에서 절대 명함에 낙서를 해서는 안 된다. 명함이 곧 상대방인데 명함에 뭔가를 끼적인다는 것은 그 사람 얼굴에 낙서를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런 에티켓은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같은 동양이라도 인도ㆍ중동ㆍ동남아시아 등은 명함을 오른손으로 주고받는다. 양손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아프리카도 마찬가지다.전 세계인과 교류할 기회가 잦아지면서 명함의 한쪽 면을 영어로 적는 일도 많아졌다. 이때 이름 표기법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경우가 그랬다. 반 총장은 영어 이름을 명함에 ‘Ban Ki-moon’으로 썼다.

유엔 사무국 직원들이 반 총장의 이름을 정확히 모르고 Mr. Moon 또는 Mr. Ki-moon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자 유엔 사무국은 ‘Mr. Ban’으로 불러 달라는 공문을 직원들에게 보냈다고 한다. 바른 영문 이름 표기법은 이름이 먼저 나오고 성이 나중에 나오는 ‘Ki-moom Ban’이다. 그러나 최근 “이름은 고유한 것인데 외국식 표기를 따를 필요가 있느냐”는 움직임이 일면서 영어 명함에도 ‘성+이름’ 순으로 쓰는 사례가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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