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종교간 손잡기' 口頭禪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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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우리는 오늘 온겨레와 함께 손에 손을 잡고 분단과 전쟁의 시대를 넘어 화해와 평화의 세기를 열어나갈 것을 선언합니다. "

1일 오후 3시 종교인 대표 3백33인은 '화해와 평화를 향한 선언문' 을 낭독했다. 이어 방방곡곡에서 17만여명이 서로 손을 잡았다. 불자들과 기독교도와 원불교.민족종교등 7대종교 신도들이다.

81년전 각 종교가 앞장서 외친 독립만세가 이제 '화해와 평화' 로 바뀌었다.

이날 행사는 종교적 측면에서는 화해와 일치를 위한 대중적 운동이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오늘도 나이지리아에서 이슬람과 기독교도 간에 내전에 가까울 정도의 유혈사태가 일어나고 있듯 종교간의 갈등으로 지구촌에서 끊임없이 분쟁이 일고 있다. 종교간의 화해를 이루고 나아가 남북과 동서의 벽도 허물자는게 이날 운동의 취지였다.

그러나 이날 행사는 원래 계획의 10분의 1로 축소될 수 밖에 없었다.

7대종단이 참여한 온겨레손잡기운동본부는 판문점에서 대전까지, 다시 대전에서 목포와 대전에서 부산까지 총 1백50만~2백만명이 인간사슬을 이으려했으나 서울에서 청주까지만 잇고 나머지 도시에서는 실내외 행사로 그치고 말았다.

개별 교회나 사찰이 신도들의 '동원' 에 냉담했기 때문이다. 각 종단들이 발표한 신도수를 합치면 우리 인구를 상회한다.

또 개별 교회나 사찰 행사로는 수천, 수만 신도를 동원할 수 있는 곳도 즐비하다. 종교적으로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명분있는 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종교간의 화합으로 남북과 동서의 화합을 이루자' 는 취지는 10분의 1의 성공밖에 거둘수 없었다.

"최소 1백만명은 기대했는데 그렇지못해 행사를 포기한 부분이 많아 안타깝다. 다종교 사회인 우리에게 이웃 종교를 포용하고 신앙적 삶의 공유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

이번 행사의 실무를 맡았던 중앙실행위원회 변진흥 사무총장(인천가톨릭대 교수)은 행사 후 자신의 종교와 교회.사찰의 테두리를 훌쩍 뛰어넘지 못한 우리 종교계 행태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개별 단위의 성직자와 신도들이 대사회적 활동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한 '종교계 화합' 은 종단 지도자들의 구두선에 그치고 만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 행사였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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