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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선거보도 제재와 언론 책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언론규제 선거법에 관해 대통령의 법 개정 지시까지 나온 상태여서 대체적 논의가 마무리된 상태다.

그러나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보지는 않기에 나름대로 견해를 밝힐 필요를 느낀다.

이같은 법이 제정된 배경을 놓고 볼 때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 했던 정치권의 사고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볼 수도 없으며 언론인에게 체형까지 가할 수 있는 독소조항이 들어 있는 전근대적 법조항이 살아 있는 한 그 법의 집행여부와 관계없이 언론의 자유는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법은 신문의 선거보도를 방송과 유사한 기구로 만들어 심의.규제하겠다는 발상부터 크게 잘못된 것이다.

신문과 방송은 매체의 성격이 다르다. 방송은 그 특성상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일정한 규제를 가하도록 돼 있다.

방송위원회라는 독립 규제기구가 준사법.준입법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법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방송국의 개설은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부터가 인쇄매체와는 다른 점이다.

그러나 신문은 타율적인 규제를 배제하는 것이 원칙이다. 선거보도라 하더라도 '공정성' 여부를 심의해 언론사의 불복절차를 배제한 채 사과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언론에 대한 타율적 규제라는 문제가 있다.

다음으로 선거보도의 불공정 여부를 판정하는 기준이다. 모든 입후보자에게 '공정한' 기준을 적용해 똑같은 지면과 방송시간을 배정하는 것이 공정보도인가 하는 현실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이는 법으로 간단히 규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대통령선거와 서울시장선거 때 방송사의 TV토론과 '관훈토론회' 가 군소 후보자들은 제외하고 토론을 벌였지만 그것을 '불공정' 하다고 보지는 않았다.

시민단체들이 벌이는 낙천.낙선운동이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는 현상을 보더라도 산술적인 잣대로 위법성 여부를 획일적으로 판가름해 제재를 가한다는 것은 무리다.

결국 이해 당사자가 '불공정' 하다고 주장하는 기사를 심의해 중재위원회의 중재업무를 좀더 신속한 방법으로 처리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며, 규제의 방법도 중재위원회가 할 수 있는 범위에 국한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불공정보도의 처벌 절차와 방법에도 문제가 있다. 한시적 기구를 두어 선거보도를 심의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지역 군소 매체들의 불공정보도 규제가 이 법이 주요 목적의 하나라지만 오히려 군소 매체는 심의에 포함하기 어려울 것이며 결국 규모가 큰 중앙 언론사가 주된 대상이 될 것이다.

선거법이 피해구제의 수단으로 정한 사과문의 게재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하다.

헌재는 1991년 4월에 "사죄광고를 강요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를 제약하고 인격의 존엄을 해친다" 고 결정했지만 피해구제의 방법자체를 위법으로 본 것은 아니다.

원래 기사의 취소광고,가해자의 명예훼손죄의 유죄판결문 게재,가해자가 패소한 민사금전 배상판결의 게재 등은 위헌이 아니다. 이는 언론이 피해자의 구제를 위해 해야 할 책임을 면제하는 것은 아니며 명예회복에 최선을 다할 의무도 함께 규정한 결정이었다.

선거법 제정과 시행과정을 돌이켜보면 언론 쪽에도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언론은 이제 와서 언론 자유의 침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이같은 법률이 제정되는 동안 책무를 방기하고 있었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돼 있다.

법적인 논란과는 별개로 언론은 정치권에서 왜 이런 법을 만들기로 했을까 하는 점에 대해 겸허한 자세로 자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여당과 야당을 막론하고 정치인들이 볼 때 언론의 불공정 보도로 인한 피해를 본 경우가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같이 편의적인 방법으로 강력한 규제를 하겠다는 구시대적인 발상이 나왔을 것이다.

아무리 작은 매체라도 개인의 명예를 치명적으로 훼손할 수 있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으며,치열한 선거과정에서는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언론인들은 깊이 인식해야 한다.

이와 함께 정치인들도 공정보도라는 명분으로 언론을 억압했다간 민주주의는 후퇴할 것이며, 선거가 공정하게 이뤄지기도 어려울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정진석<한국외국어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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