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함께] 나의 조상, 있는 그대로 보고 싶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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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얘기를 책으로 내놓고 보니 좀 껄끄럽네요. 다시 쓰라면 못하겠습니다.”

자신의 가문과 조상의 1000년 역사를 소재로 『나의 천년』을 낸 출판평론가 표정훈(36·사진)씨. 사실 이른바 강남 8학군 출신에다 평소 개인주의자를 자처하는 그가 갑자기 뿌리찾기에 나섰다니 자신은 물론 독자들도 의아해할 만하다.

그렇다고 가문의 내력이 특별히 화려한 것도 아니다. 신창 표씨는 후손들을 모두 불러모아 봐야 잠실 야구장을 채우기도 힘든 귀한 성인데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문과급제자가 10명 남짓이다.

이에 대해 그는 “조상에 대한 숭배와 존경이 아닌 솔직한 대화가 목적이었다”고 출간의도를 설명했다. 실제로 책은 족보의 권위와 신화를 부정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중국에서 고위관리를 지내다 귀화했다는 시조 표대박이 과연 실존인물인지도 불분명하다는 ‘불경스러운’발언이 나오고 모계를 포괄하지 못하는 남계 중심의 ‘혈통 신화’도 단정적으로 비판한다. 조상을 평가하는 시각도 독특하다.

“보통 훌륭한 조상이라고 하면 도덕군자로 명망을 떨친 선비나 높은 벼슬을 한 고관대작을 꼽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였고 개인적 이익을 추구한 역관 출신의 조상에 더 끌립니다. 왠지 시대를 앞서간 것 같거든요.”

책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가까운 집안사다.

식민지 시대 중앙고보를 나와 첨단 전기 기술을 익혔던 그의 조부 표문학은 철저한 사회주의자이면서도 대표적 자본가였던 인촌 김성수를 존경했다. 부친 표명렬은 육사를 나와 장성까지 지낸 인물이지만 광주사태를 비판하고, 대통령이 하사한 ‘삼정도’를 미련없이 쓰레기통에 버렸다. 저자는 이처럼 이중적인 성격을 지녔던 조부와 부친을 통해 우리의 근대사를 본다. 그리고 비판하고 평가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포용한다.

“현재 논란이 일고 있는 과거사 정리라는 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의문스럽습니다. 한 집안 안에서도 개인을 평가하기가 이처럼 어려운데 사회 전체의 범위에서라면 말할 것도 없죠. 만약 가능하다 해도 현재의 시각으로 과거에 메스를 대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요? ”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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