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틴틴] 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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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칼 짐머 지음, 이창희 옮김
세종서적, 465쪽, 3만원

인류의 공통 조상은 14만년 전 아프리카에 살던 한 여성이라는 학설이 있다. 일본 국립유전학연구소가 세계 인구를 샘플로 조사해 내린 결론이다. 그러면 그 여성은 흑인이었을 것이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아프리카에 살고 있었다면 피부가 흑색으로 변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인류는 흑인·백인·황인종 등으로 피부색이 확연히 다르다. 어떻게 흑인이 백인·황인종이 되었을까. 해답은 진화다. 햇빛이 많은 아프리카에서는 피부의 멜라닌 색소를 두껍게 쌓아야 자외선을 이겨낼 수 있다. 적도에서 멀어질수록 햇빛이 약하고 자외선이 적어진다. 이는 피부의 멜라닌 색소의 농도를 점차 옅어지게 해 황인종·백인종이 생겼다는 것이 현대 과학의 결론이다. 아주 긴 세월을 지나오면서 자연에 적응하기 위해 피부의 색이 조금씩 변한 것이다.

그러나 45억년의 지구 역사 속에서 그런 진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알지 못했다. 그같은 진화를 눈치 채기에는 인류는 시간도 능력도 모자랐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진화라는 개념이 만들어진 것도 불과 200년이 되지 않았다. 지구의 나이에 비하면 사람들은 너무나 짧은 시간을 살다 죽을뿐더러 진화라는 게 며칠 만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외계인이 있어 14만년 전의 그 아프리카 여성을 본 뒤 2004년 어느 날 지구를 다시 방문해 인류를 봤다면 흑인이 갑자기 백인·황인종이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아주 조금씩 변해온 중간 과정을 볼 수 없고 진화라는 개념을 몰라도 뭔가 큰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금방 느낄 것이다.

과학 칼럼니스트인 칼 짐머의 『진화』는 장대한 진화의 역사와 현상을 얽힌 실타래를 풀어내 듯 쉽게 설명한 보기 드문 과학 교양서다. 수백년 내지 수십만년에 걸쳐 일어나는 진화를 대학 교과서 크기만한 책자 하나에 담았지만 그 세밀한 묘사는 읽는 이를 푹 빠지게 한다. 2001년 과학잡지 디스커버와 뉴사이언티스트가 이 책을 그 해의 최고 과학도서로 꼽은 데 대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진화=자연의 선택’이라는 것이 이 책의 첫장부터 끝까지 흐르는 주제다. 자연이 원하기 때문에 생물이 거기에 맞춰 사는 것이고, 맞추지 못하는 생물은 멸종의 비운을 맞는다는 것이다. 철학자 다니엘 데넷의 말에서도 진화론이인류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느낄 수 있다. 데넷은 인류가 떠올린 가장 좋은 생각 중 단 하나에 상을 준다면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이 아니고 다윈의 진화론에 줘야한다고 했다.

다윈은 진화가 워낙 느리게 일어나기 때문에 그 진화를 인류가 눈으로 볼 수 있을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1980년대 말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리버사이드 분교의 생물학자인 데이비드 레즈닉은 열대 관상어인 구피(송사리 일종)에게서 진화의 한 단면을 봤다. 11년간 구피를 관찰한 결과 구피를 잡아먹는 동물이 많은 물에 사는 구피는 11년 전 조상 구피와 똑같이 왜소하고 수명이 짧았으나, 적이 거의 없는 곳으로 옮겨 사는 구피는 몸집이나 수명이 10%나 크고 긴 종류가 나왔다. 진화가 급속하게 이뤄진 것이다. 병균은 생물 역사상 최근 몇십년만큼 많은 ‘화학폭탄’ 세례를 받은 적이 없을 것이다. 각종 항생제며 치료제가 연일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병균은 거기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종으로 진화해 살아 남고 있다. 이 때문에 불과 10여년 전에 개발한 항생제가 잘 안들을 정도로 병균이 변화한 것이다.

위대한 과학자인 다윈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읽는 것도 하나의 기쁨이다. 청소년들의 적성과 꿈을 부모의 가치관으로 재단하려들면 자녀를 ‘21세기 다윈’으로 키울 수 없다는 교훈도 얻을 수 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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