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 코스닥, 공포의 수건돌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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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투자와 투기는 분명한 선을 긋기가 어렵다. 그래서 흔히 동전의 앞뒤에 비유되기도 한다. '월가(街) 제멋대로 걷기' 의 저자 버턴 멀키일은 실적.내재가치를 바탕으로 합리적 예측과 장기적 안목에서 주식을 사들이는 행위를 투자로 정의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바다에 잠길 것으로 예상하고 그 옆의 애리조나 사막을 사들인다면 이는 투기다. 애리조나에로의 유입인구와 택지개발 동향.수자원 공급 상황 등을 눈여겨 보며 장기적 관점에서 땅을 사들인다면 이는 투자라는 비유다.

우리 코스닥 주가는 그 기업의 과거 실적이나 내재가치와는 거리가 멀다. 회사 이름에 '닷 컴' 이나 무슨 '텍' '텔' 만 붙으면 주가는 뜬다.

오로지 믿느니 미래가치요, 시대의 흐름이다. 코스닥 등록을 기다리는 벤처기업이 6백여개, '제 돈 좀 써주십시오' 하며 맴도는 뭉칫돈이 30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코스닥시장이 돈 놓고 돈 먹는 '투전판' 양상을 띠면서 '공포의 수건 돌리기' 란 비유도 등장한다. 매집(買集)이나 작전, 허수(虛數)주문 등으로 잔뜩 띄워 놓고 어느 순간 갑자기 빠지면 그대로 곤두박질이다.

앉은자리 뒤로 수건을 빙빙 돌리다 어느 순간 멎는 곳이 다 뒤집어쓴다. 이 수건 돌리는 속도가 현기증나게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 더 문제다.

하루에도 주식을 몇번씩 사고파는 단타(單打)매매는 코스닥시장이 세계 1위로 조사됐다. 주식투기의 새 수법인 데이트레이딩(초단기 주식매매)이 증시의 세계화와 사이버주식 거래 바람을 타고 성행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데이트레이딩은 컴퓨터게임하듯 마우스 한두번 클릭으로 사고팔기를 거듭한다. 직장이든 가정이든 인터넷방이든 장소는 상관없고 사고파는 결정은 순간적, 이들에게 장기(長期)는 당일 오후일 뿐이다.

우리의 데이트레이딩은 환란 직후 증권사들의 약정 경쟁에서 비롯됐다. 증시가 불황의 늪에 빠지자 증권사들은 자기 자금을 동원해 '공중 몇 회전' 시켜 약정 규모를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늘리곤 했다.투신 등 자금운용사들은 수익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익을 얼마라도 보태기 위해 뛰어들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데이트레이딩의 격증은 이들 기관이 아닌, 개인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국민 세사람에 한명꼴로 주식계좌를 갖고 있고, 실제 투자인구는 5명 중 한명꼴이다. 이중 사이버 주식거래 인구는 전체의 40%를 웃돌아 이 역시 세계 최고다.

세계증시와의 동반장세로 주가는 '밤새 안녕' 을 걱정할 정도로 출렁이고, 위험 못지 않게 '반짝 차익' 의 유혹 또한 커진다. 제 돈 놓고 투기하다 망하면 그만이라며 개인들 문제로 돌려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증시의 안정적 발전과 개인적.사회적 건강에 이처럼 해로운 것도 없다. 과도한 매수.매도에 따른 주가 널뛰기는 투자자의 불안을 부추기고 '가만 있다간 낭패본다' 는 심리를 조장해 모든 투자자들을 '수건 돌리기' 에 몰아넣는다.

이 과정에서 허수주문과 작전이 판을 친다. 주가가 큰 흐름을 타는 상승장세에서 단타매매는 '푼돈' 은 먹지만 결과적으로 손해볼 수도 있다. 개인투자자들의 실패율은 미국에서 80%에 이른다.

직장을 팽개치고 아예 업(業)으로 삼는 이도 있고, 빌린 돈을 날리고 자살하거나 격분한 나머지 총기를 난사한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 10여개 데이트레이딩 회사에 계좌를 열고 '순간' 을 먹고 사는 인구가 4천~5천여명, 이들의 평균 하루 거래횟수는 무려 29회다. 증시의 사이버화가 몰고오는 역풍이다.

대책의 일환으로 하루 주가변동폭의 확대 내지 폐지가 추진 중이다. 등락폭이 커지면 투자에 신중해져 시장안정에 도움이 되고, 가격 결정폭을 시장에 맡기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같은 '묻지마 장세' 에서 조급한 등락폭 확대는 단기적으로 더 큰 널뛰기와 혼란을 불러올 위험도 크다.

선진 증시에서도 일정폭 이상 급락하면 전기의 두꺼비집처럼 거래가 중단되는 '서킷 브레이커' 장치가 고작이다.

열가지 안정장치보다 투자자의 건전한 투자행태와 '가치투자' 관행이 더 중요하다. 모처럼의 세계 1위가 투자자들을 카지노판으로 몰아 우리 증시의 '판' 자체를 깨뜨리는 비극을 자초해서는 안된다.

변상근<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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