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리뷰] 세 남자의 수다 '배꼽잡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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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 연극 ‘아트’의 A팀 배우 이대연.권해효.조희봉(왼쪽부터).

'예술이란 무엇인가'. 꽤 무거운 얘기다. 연극 '아트'(연출.번안 황재헌)는 바로 이 바위 같은 주제를 골랐다. 그런데 막상 공연장에선 쉴 새 없이 웃음이 터졌다. 묵직한 주제와 경쾌한 웃음, 그 사이에 도대체 어떤 다리가 놓인 걸까.

'아트'에는 세 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셋은 20년 지기다. 어느 날 의사인 수현(조희봉)이 그림을 산다. 흰 바탕밖에 안 보이는 하얀 그림. 그런데 그림 값은 1억8000만원이다. 규태(권해효)는 이해를 못한다. 아파트 전셋값보다 비싼 그림인데 아무리 마음을 열어도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다. "판때기에 불과해, 사기야"라는 규태의 지적에 수현은 "이건 해체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해"라고 강하게 반박한다. 중간에 낀 덕수(이대연)마저 논쟁에 말려든다.

싸움은 커지고, 셋은 서로의 묵은 상처까지 건드린다. 급기야 규태는 "난 유행 같은 것 안 믿어. 금방 사라지니까. 나도 너에게는 그런 유행 같은 존재였겠지"라며 핏대를 세운다. 20년 우정에 "쩌~엉!"하고 금이 간다. 결국 셋은 기로에 선다. 예술이냐, 아니면 우정이냐. 작품은 여기서 관객들에게 물음을 던진다. 미학적 갈망의 대상인 예술과 피부에 착착 감기는 구체적인 삶, 둘의 관계는 과연 무엇인가. 누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갈등에 종지부를 찍는 세 사람의 해결책이 기발하고 흥미롭다.

지극히 철학적인 주제를, 너무나 코믹하게 풀어내고 있는 '아트'의 매력은 대사다. 프랑스 연극계의 대표 작가인 야스미나 레자의 원작을 감칠맛 나는 우리말로 되살렸다. 짧게 끊어 치는 빠른 템포의 대사는 극에 속도감을 안긴다. 상대방 테이블의 구석구석을 때리며 잽싸게 오가는 탁구공처럼 말이다. 출연자는 딱 세 명. 배우들은 '세발 자전거'였다. 한쪽 바퀴만 말썽을 피워도 극 전체가 기우뚱거린다. 그런데 세 사람이 돌리는 바퀴는 탄탄했다. 각자의 캐릭터는 색깔이 있었고, 생동감도 넘쳤다. B팀(화.목.토)은 정보석.이남희.유연수가 출연한다. 10월 3일까지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소극장, 2만~3만원, 02-764-8760.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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