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리뷰] 김주영 옮김 '베토벤, 불멸의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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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사람들이 말을 하면 그저 소리만 들릴 뿐 이해를 할 수 없다. 의사는 완벽한 치유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따금 내 삶을 저주하곤 하지. 운명과 싸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나 자신이 신의 피조물 중 가장 불쌍한 존재로 여겨지곤 한다. 그리고 이 말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아주길 바래. "

루트비히 반 베토벤이 1800년 6월 빈에서 친구 베겔러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다. 당시 17세. 모차르트를 이을 위대한 음악가란 칭찬을 막 들을 즈음이었다.

그러나 신은 음악가인 그에게서 듣는 능력을 빼앗으려 한 것이었다. 이 사실을 비밀로 해달라는 베토벤이 안쓰럽기만 하다.

악성 베토벤의 생생한 육성을 담은 편지선집 '베토벤, 불멸의 편지' (김주영 옮김.예담.9천8백원)가 나왔다.

벗과 연인, 동생과 후원자들에게 보낸 편지 중 그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1백20여 편(일부 일기와 메모 포함)을 가려냈다.

이미 소개된 베토벤 평전과 구별되는 장점은 그가 사랑하고 고민하고 그리고 즐거워했던 순간들이 그 감정 그대로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가슴 저미게 하는 것은 '불멸의 연인' 에게 보낸 편지. 평생 독신으로 산 베토벤이 죽은 후 그의 서랍 속에서 발견된 연서 세 통은 편지를 쓴 연도도 수신인도 없이 검은 봉인이 된 채 발견됐다.

누구에게 보낸 것인지 아직도 알려지지 않는 이 편지에서 베토벤은 "잠자리에서도 내 생각은 그대, 내 불멸의 연인에게 달려갑니다. 그대 팔에 날아가 안길 때까지, 그대 곁을 내 집이라 생각할 수 있을 때까지(중략)그날이 아무리 멀다 해도 방황을 멈추지 않겠소" 라고 고백한다.

편지는 과연 여자를 향한 것이었을까, 음악을 향한 것이었을까.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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