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을 잃었던 늙은 요리사가 새 반려자를 만나 미각을 회복하고, 딸들도 제 인생을 찾아 삶을 이어간다는 게 큰 줄거리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음식과 사랑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담담하게 펼쳐지는 작품이다.
제목 ‘음식남녀’는 사실 『예기(禮記)』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마시고 먹는 것과 남녀 사이의 사랑은 사람의 큰 욕망이 머무는 곳(飮食男女, 人之大欲存焉)”이라는 내용이다. 사람이 삶을 영위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식욕(食欲)과 색욕(色欲)을 말하고 있다.
공자(孔子)가 주창하는 유교의 가르침은 실제 사람의 본성에 가까운 이 두 가지 욕망에 대한 긍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공자는 단지 본성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욕망에 대한 절제를 함께 말하고 있다. 본성에 따른 행동을 도덕과 윤리의 근간인 예(禮)에 맞춰 조화롭게 절제하자는 것이다.
유가에서는 타고난 성정을 질(質), 후천적인 교육을 통해 덧붙여지는 것을 문(文)이라고 했다. 두 가지가 잘 어울리는 게 이상적이지만, 바탕의 성정이 후천적인 교양을 넘어서면 그를 ‘야(野)하다’라고 표현했다. 식욕과 색욕으로 일관하면 문명과는 거리가 먼 야만으로 해석해도 좋다는 여지를 남긴 셈.
중국의 한 현대 작가는 『예기』의 구절을 엉뚱하게 끊어 읽어 이렇게 비튼다. “음식과 남성, 여인의 큰 욕망이 머무는 곳(飮食男, 女人之大欲存焉)”. 여성 비하의 취지가 아니다. 남성 위주의 사회가 주는 억압감에서 여성이 선택해야 하는 보잘것없는 가치를 말하고자 했다.
요즘 ‘루저(loser)’ 논란이 한창이다. 키 작고 별 볼일 없는 남자들에 대한 여성의 조롱이다. 욕망을 향해 벌거벗은 사회라며 흥분하는 이가 많지만, 따지고 보면 여성을 극단적으로 상품화해 온 남성들의 자업자득이다.
가려지지 않는 욕망, 야욕(野欲)이 들끓는 세상이다. 먹고 마시는 데 탐닉하면서 음침한 눈으로 이성을 곁눈질하는 사회. 조화와 절제를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늦은 이 사회의 일그러진 풍경화다.
유광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