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과거·현재·미래권력 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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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논란은 규제로 비유하면 ‘덩어리 규제’다. 가치들이 얽히고설켰고, 충돌한다. 그만큼 풀기도 어렵다. 수정이든 원안 고수든 주장하는 입장에선 포기할 수 없는 진리다. 어쨌든 가치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조차 “어느 쪽이 옳거나 그르다고 일도양단(一刀兩斷)하기 어렵다”(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강원택 교수), “진퇴양난의 딜레마”(서강대 정외과 손호철 교수)라고 말하는 이유다.

① 과거 권력 vs 현재 권력 vs 미래 권력=“원안대로 하면 편하다”는 이명박 대통령이 굳이 재임 중 해결책 찾기에 나선 건 업적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마주할 수밖에 없는 현직 대통령으로서의 고심 때문이다. 측근들은 “책임감”이라고 표현한다. 차기를 꿈꾸는 미래 권력이랄 수 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원안 고수를 주장한다. 국민과의 ‘큰 약속’이란 인식에서다. 친박계에선 “영남 표심에다 충청 표심까지 더하는 결과여서 손해볼 게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반면 세종시 논란의 씨앗은 노무현 정부 때 뿌려졌다. 여의도에선 그래서 “노무현의 세종시와, 이명박 또는 박근혜의 세종시가 충돌 중”이란 비유도 한다.

② 효율 vs 신뢰 vs 통일=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부터 “수도 분할이 수도 이전보다 더 나쁘다”는 입장을 보였다. 비효율적이어서 국가 경쟁력을 해칠 수밖에 없다는 거다. 반면 박 전 대표와 야당은 신뢰를 강조한다. “정치 불신이 가져오는 정치적 비효율성에 대해선 생각해 봤느냐”(한나라당 유정복 의원)고 반박한다.

여기에 통일 이후 어떻게 할 거냐는 논쟁도 더해져 있다. 독일처럼 수도 이전이 불가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사석에서 “이곳 저곳에 수도를 흩어놓으면 통일 이후엔 어떻게 할 거냐”고 반문한 일이 있다고 한 측근이 전했다.

③ 중앙 vs 지방=국토의 균형 발전이란 국가적 어젠다도 걸려 있다. 수도권 집중을 어떻게 해소할 거냐의 문제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세종시 원안 고수를 자신의 지론인 강소국 연방제와 연결시켜 ‘분권 개념’으로 설명한다. 세종시에 기업 투자 유치 등의 혜택이 집중되면서 상대적으로 기회를 못 가질 다른 지역의 문제도 있다. 서강대 이현우 교수는 “정치 생리상 더 주겠다는 ‘플러스’ 얘기만 하고 있는데 추가 혜택을 주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념 갈등도 한 축이다. 보수 대 진보의 단선 구조는 아니다. 보수 내부도 나뉘어 있다. 효율을 중시하는 이른바 ‘시장 보수’들이 “정부를 분할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의 오랜 후원회장인 남덕우 전 총리도 이들 중 하나다. 이들은 지역적으론 수도권에 많다. 중앙대 정외과 장훈 교수는 “세종시 논란은 두 차례나 헌법재판소로 갔을 정도로 풀기 어려운 난제 중 난제”라며 “5년여 지난 만큼 우리 사회가 이젠 묘안을 짜내고 타협하고 갈등을 조정할 만한 능력을 갖췄는지 테스트해 볼 기회”라고 말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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