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할당제 성공하려면] 1. 균형사회로 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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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선거에서 비례대표 후보 중 30%를 여성에게 할애하는 '여성할당제' 가 현실화돼 우리나라에도 본격적인 여성 정치참여의 물꼬가 트였다.

여성의 적극적인 정치참여는 우리 사회에 또하나의 변혁을 몰고 올 것이다.지금 걸음마를 시작한 여성할당제가 제자리를 잡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중앙일보는 전문가의 긴급제언 '여성할당제 성공하려면' 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어 독자 토론장도 마련한다.

의견이 있으신 분은 팩스(02-751-5627) 나 e-메일(kyoung@joongang.co.kr)로 보내주시거나 게시판(http://bbs2.joins.co.kr/servlet/ViewList?ID=kms_01)에 의견을 적어 주시기 바랍니다.

남성적 영역에 여성이 침투하고 있다.

서울대 의대 신입생 절반을 여학생이 차지해 수능시험 1등에 여자, 첫 여성 경찰서장, 핀란드의 첫 여성대통령 탄생, 일본에서 첫 여성지사 당선이란 보도들이 최근 뉴스로 떠오른다. 이런 상황에서 며칠전 우리나라에는 '여성할당제' 가 법제화됐다.

이것은 21세기가 '여성의 시대' 라는 징후들인가. 여성의 시대란 여성 상위나 여성의 지배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남성지배 구조와 문화의 근대적 질서를 비판적으로 재조명하면서 궁극적으로 남성과 여성,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통합 속에서 배려.유대.균형의 '여성적 가치' 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사회 패러다임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시대는 말의 성찬만큼 낙관적인 전망을 허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 속에서 중심으로 진입한 소수를 제외하면 여성은 더욱 주변화할 처지에 놓여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양적으로는 증가하지만 양극화된 노동시장 속에서 불안정한 노동군(群)으로 여성의 빈곤화가 속도를 더할 것으로 예견되는 상황이다.

또한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대가로 가져온 자연파괴.전쟁.갈등의 위험사회가 '여성적 가치' 를 중심으로 한 균형사회를 실현할 수 있을지는 단지 선택의 갈림길로만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그것들을 가능케 하는 것은 여성의 '정치세력화' 다. 오늘날 세계 여성운동의 중심적 논의가 되고 있는 '여성의 정치세력화' 는 협의로는 정책결정 과정에 여성의 대표성을 증가시키는 것이지만 광의로는 '여성적인 것' 의 사회적 영향력의 확대를 뜻한다.

여성이 사회세력화를 이룬 만큼 여성의 대표성을 증대시킬 수 있으며, 여성의 대표성이 증가하는 만큼 여성적 가치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하나의 장치가 '여성할당제' 다. 특정집단이 사회에서 크게 배제돼 있는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한 집단의 대표성이 일정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국가가 정책적으로 취하는 '적극적 조치' 중의 하나가 할당제다.

상대적으로 민주주의가 정착돼 있는 정치 선진국에서도 여성 개인이 넘어설 수 없는 정치적 장벽의 현실적 존재를 인정해 할당제를 채택하고 있다.

하물며 남성들의 밀실정치.금권선거.패거리정치의 우리 정치현실에서 경제력.연고.조직에 약한 여성들이 그러한 현실적 '경쟁력' 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러한 경쟁의 대열에는 참여해서도 안될 것이다. '여성할당제' 는 단지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개혁과 함께 새로운 균형사회의 패러다임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장하진<충남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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