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삼칼럼] 대안정당에 주목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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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장기표(張琪杓)씨와 함께 '무파벌.지역타파.개혁신진' 의 '무지개연합' 을 만들어 제법 새바람을 일으키던 홍사덕(洪思德)의원이 끝내 기성 정당에 '투항' 했다.

또 다른 정치그룹인 '한국의 선택21' 도 분열과 기존 정당에 흡수라는 코스를 밟고 있다고 들린다. 그들 개개인에 대한 비판여론도 일고 있다지만 기성정치와 현실의 벽이 얼마나 높은가 하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도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안(代案) 정당에 관한 관심과 기대를 접어서는 안된다.

현재 시민단체들이 벌이고 있는 낙천.낙선운동이 정계에 큰 충격과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동안 무관심과 체념에 젖어 있던 국민의 의식도 일깨워서 '이번에 만은…' 하는 기대도 갖게 하고 있다.

그런 시민단체들의 정치개혁운동에는 박수를 보낸다. 일정한 성과를 거두리라는 것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과연 낙천.낙선운동으로 곪을 때로 곪은 우리 정치를 근본적으로 수술할 수 있을 것인가. 낙천.낙선운동만으로는 지역구도 타파가 불가능할 것이란 불길한 조짐이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또 어차피 낙천.낙선운동은 정치적 기피인물을 가려내는 최소한의 정치개혁운동이기에 '그러면 누구를 뽑을 것인가' 하는데 대한 대안제시는 하지 못한다. 정치보스의 자의적 공천에 다소 영향을 주긴 했지만 반영 안해도 그뿐이라는 한계도 있다.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역시 유권자들이 힘을 모아 대안정치.대안정당을 만들어 내는 데 있다고 본다.

일본도 정치불신이 우리 못지 않아 유권자의 50%에 이르는 무당파(無黨派)층이 선거 때마다 정치적 이변(異變)을 만들어 내곤 한다.

자전거로 유세를 한 후보가 대도시 시장이 되는가 하면 탤런트가 유명정치인을 꺾고 당선돼 일본 국민의 가슴을 후련하게 한 경우가 선거 때마다 있어 왔다.

그러나 그런 변화의 효과란 기껏해야 무더위 속의 한마당 소나기였을 뿐이다. 무당파들의 반란은 일시적인 카타르시스는 가져다 주었지만 일본 정치를 근본적으로 변화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인물의 교체만으론 정치가 변화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하도 답답하니 인물이라도 바꿔 보자는 것이겠지만 정치 변화를 기대한다면 역시 그 해답은 정당의 변화와 새로운 정당의 탄생에서 찾아야 한다.

약간의 차별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이나 자민련이나 크게 보면 한통속이다. 그러니 이 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애써 인물을 고른다고 골라봐야 변화를 기대할 수 없고 결국 기성정치의 덫에 빠질 뿐이다.

'21세기 사전' 을 쓴 자크 아탈리에 의하면 21세기는 어린아이가 레고를 조립하고 놀듯 사람들이 다양한 문명을 조립하면서 사는 개성화한 세기다. 우리 사회에도 이미 다양한 삶의 방식과 사고가 동시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들을 지금의 민주당.한나라당.자민련만으로 담아낼 수 있을 것인가.

'천만에' 일 것이다. 그런데도 정치현실은 민주당.한나라당.자민련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고 있'고 있으니 만성적인 정치불신과 무관심이 빚어지는 것이'다.

민주당.한나라당.자민련이 차별성 있는 정책정당으로 재탄생하는 것이 한 해결책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라면 기성 정치구조에 충격을 줄 대안정당의 등장이 그 해답일 수 있다.

녹색당이 유럽의 정치구조 변화에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가. 우리 정계에도 비록 소수당일망정 그런 자극제.방부제 역할을 해줄 정당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가 대안정당으로 주목해볼 만한 정당들은 너무도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동당도, 장기표씨의 청렴정치국민연합도 아직은 지지율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대안에 목말라하면서도 막상 대안을 자처하고 있는 정당엔 무관심한 현실에 대해서는 우선 그 정당 관계자들이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다양성을 창출해 정치구조를 능동적으로 개혁하려는 국민의 '깨어 있는 정치의식' 의 부족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 진보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인 노력으로 쟁취하는 것이다.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이 정계에 기대이상의 충격을 주었듯 비록 소수 의석일지라도 기존 정당과 성격이 다른 정당의 정치인들이 국회에 진출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고여 있는 늪과 같은 한국정치에 놀랄 만한 자극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것은 무성격의 기존정당을 정책정당으로 변신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치발전을 원한다면, 사회의 변화를 바란다면 설사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이번 선거에서는 의도적.의식적으로 대안정당에 주목하고 그들의 원내진출을 지원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기성정치의 덫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유승삼<중앙m&b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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