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정홍보인가 총선홍보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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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들어 총선을 앞둔 관권 개입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정부.여당은 전면 부인하거나 "정상적인 국정수행일 뿐" 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도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 가 계속 피어오르고, 농림부의 경우 급기야 홍보책자 배포건으로 장관이 선관위 경고까지 받았으니 딱한 노릇이다.

우리가 보기에 정부.여당은 국정 홍보와 총선 홍보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말로는 통상적 업무수행이라고 하지만 총선을 의식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색이 역력하다.

지난 설 연휴 동안 국정홍보처가 제작한 '설 고향가는 길' 이라는 책자가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대량 배포되는 것을 보고 정부의 정상적인 홍보활동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책자에 현 정부의 업적을 자랑하는 내용이 들어있음은 물론이다.

재정경제부가 만든 '희망의 새 천년' 이란 홍보책자가 일부 지방 버스터미널에 쌓여 있던 까닭은 무엇인가.

국정홍보처측은 "설이나 추석 때 통상 배포하는 책자로 올해는 문화 관련 홍보가 추가돼 예년보다 10만~20만부를 더 찍어 돌렸다" 고 해명했지만 의구심을 해소하기엔 모자란다.

재경부가 타 부처 소관사항까지 묶어 펴낸 책자도 "달라진 제도들을 알리기 위한 것" 이라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총선과의 연관성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번 총선은 누구보다 정부.여당이 먼저 나서 중심을 잡아야지, 아니면 혼탁.과열로 흐를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크다.

정부든 시민단체든 조금씩 법을 무시하는 풍조로 번져 선관위가 '종이호랑이' 가 돼서는 안된다.

일부 자치단체장은 업무수행을 빙자해 사실상 사전 선거운동에 열중한다니 중앙정부와 여당부터 공명선거 의지를 보여야 기강이 바로서지 않겠는가.

때가 때인 만큼 총선 홍보에 준할 국정 홍보는 차후로 미루는 게 정부의 공명선거 의지를 확고히 하는 모범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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