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칼럼] 보스들은 왜 답이 없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누가 자기이름을 부르면 돌아보고 답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누가 자기에게 무슨 요구를 해오면 가(可)타 부(否)타 대답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 정치개혁을 하라는 국민의 소리가 드높다.

낙천.낙선운동이란 형태로 나타난 시민운동은 실은 낡고 부패하고 권위주의적인 정치를 타파하고 깨끗하고 민주적인 정치, 저비용고효율의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요구요, 그것은 이제 시대의 대세가 되고 있다.

이런 국민의 요구가 있으면 당연히 답하는 사람이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국민의 그런 요구를 받고 있는 사람이 누군가.

바로 정치권이요, 그중에서도 정치지도자들이다.

그들이 답해야 할 당사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을 부르는 국민의 소리는 높건만 정작 답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시민운동에 대해 지도자들은 공감을 표하고 취지 수용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아직은 그런 말만 있을 뿐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고치겠다는 방안을 내놓는 사람은 없다.

자기들이 공천을 주고 감투를 씌워준 정치인들이 부패.저질.불성실 등으로 시민운동의 배척대상이 되고 있는 사실 자체에 대해 보스들은 스스로 낯을 붉히고 책임을 통감해야 할 텐데 이런 반성의 빛을 보이는 사람도 없다.

정치개혁의 주요대상으로 당장 공천방식이 문제되고 있다.

당원과 국민의 뜻은 물어보지도 않은 채 밀실에서 임명하듯이 공천자를 결정하는 방식은 더 이상 안된다는 소리가 높다.

시민운동에 공감한다면 이런 공천방식부터 바꿔야 할 게 아닌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고작 '투명한 공천' 을 약속했을 뿐 어느 정당도 이번에 민주적 공천방식을 채택한다는 말은 없다.

공천의 민주화 없이는 낙천.낙선운동이 자칫 보스의 공천권을 강화해주는 결과만 가져올 수도 있다.

시민운동 덕분에 손 안대고 코 푸는 격으로 쓸모가 없어진 구(舊)병력을 손쉽게 몰아내고 새 병력을 충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낙천.낙선운동이 보스의 '병력교대' 용(用)이 돼서야 되겠는가.

정치개혁의 좀더 본질적인 요구는 정당민주화다.

정당이 지역을 근거한 보스 1인의 사당(私黨)이 되고 가신(家臣)정치가 판을 치는 이런 정치는 안된다는 소리가 드높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보고 정치하는 게 아니라 보스만 보고 움직이는 풍토를 고쳐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 요구에 답할 사람은 누군가.

역시 보스가 아닌가.

그렇다면 정당의 각급회의를 활성화하겠다든가, 당직을 경선제로 한다든가, 당론의 민주적 결정을 제도화하겠다든가 무슨 회답이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어디서도 답하는 소리는 없다.

사람들은 또 고비용저효율 정치도 개혁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고보조금을 해마다 늘리고 부패정치인을 줄줄이 만들어내는 고비용구조를 고치라고 말한다.

이런 당연한 요구에 대해서도 역시 아무런 답이 없다.

정당의 유급(有給)당원을 줄인다든가, 호텔정치를 않겠다든가, 지구당제도를 개선하겠다든가 무슨 소리라도 해야 할 텐데 전혀 말이 없다.

지역주의가 정치인 때문에 더 악화된다는 지적이 나온지는 오래 됐지만 보스들은 스스로 지역감정을 완화할 어떤 회답도 내놓지 않고 있다.

정말 지역주의 정치를 걱정하고 있다면 자기지역 유권자에게 "싹쓸이는 좋지 않습니다" 는 말을 한번쯤 할 법도 한데 그저 자기지역은 굳히고 남의 지역에 대해서만 지역주의를 버리라고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단체들도 운동의 대상을 정확하게 잡아야 할 것이다.

우리 정치의 병폐가 무엇인지, 그 장본인은 누구인지, 누가 열쇠를 쥐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회답을 받아내야 한다.

정치지도자들은 시민운동을 이용하거나 회피하려 해선 안된다.

국민의 요구를 말로만 지지한다고 하고 구체적인 회답을 내놓지 않는다면 또 하나의 위선이요 이중적 행태다.

지도자란 희생과 헌신을 통해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정치개혁요구는 지도자들에게 기득권의 일부를 내놓으라는 것이고 이는 시간문제로 결국은 이뤄지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더 시간을 길게 끌어 병폐를 안고가기보다는 지도자가 결단을 내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빨리 보스들의 회답이 나오기를 고대한다.

송진혁 논설고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