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IT 제왕으로 질주하다” WSJ 보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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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 기준으로 세계 최대의 정보기술(IT) 기업은 휴렛팩커드(HP)다. 10월 말로 끝난 최근 회계연도에서 HP는 113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삼성전자의 올해 3분기까지의 누적 매출은 824억 달러(97조원).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12일 ‘삼성, IT 기업 제왕으로 질주하다(Samsung makes run at technology crown)’ 기사에서 삼성전자의 올해 매출이 HP에 육박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WSJ은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일본 전자회사보다 뒤져있다고 생각하는 삼성전자가 놀라운 발전을 이뤄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삼성전자가 1980년대 IBM의 전성기 때와 마찬가지로 최종 완제품과 부품을 동시에 생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삼성전자는 TV·휴대전화·컴퓨터·프린터 등 완제품 시장에서 치열하게 맞붙어 있는 경쟁회사에도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생산한 부품을 구입해준 고객과 다른 시장에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는 매출에서 TV와 휴대전화·컴퓨터·프린터 등의 완제품 판매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지만 동시에 이 제품들을 생산하는 경쟁업체에 반도체나 LCD 패널 등의 부품을 공급해 벌어들이는 매출이 전체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 회사가 고객과의 마찰을 피할 수 있었던 비결은 철저하게 사업부문별로 순익을 따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WSJ은 분석했다. 각 사업 부문이 철저히 분리돼 있어 외부 업체와 똑같은 조건으로 사업부문 간에 부품을 공급·조달하는 사업구조를 유지해왔다는 것이다.

시장조사기관인 디스플레이서치의 폴 세멘자 부사장은 “삼성전자의 사업부문 간 내부 경쟁은 치열하기로 유명하다”며 “하지만 업황이 극도로 나빠질 때는 사업부문 간에 협력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LCD 패널 공급이 부족해서 TV 제조업체가 아우성을 칠 때도 삼성전자는 LCD 패널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최근 독자적인 모바일 플랫폼 ‘바다’를 공개함으로써 플래시 메모리 부문의 최대 고객인 애플에 도전장을 내민 것도 이런 사업구조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WSJ은 삼성전자가 다른 기업들처럼 대형 인수합병(M&A)이나 생산업체를 아웃소싱해서 몸집을 불리지 않고, 직접 자기 공장을 지어 성장을 거듭해 왔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보도했다.

삼성전자는 3년 전에는 세계 최대의 TV 제조업체인 소니를 제쳤고 2년 전에는 모토롤라를 누르고 노키아에 이어 휴대전화 2위 자리에 올라섰다. WSJ은 삼성전자가 2020년까지 매출 4000억 달러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최근 발표했다며 이는 판매액 기준으로 세계 최대 기업인 월마트와 맞먹는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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