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홈페이지 만든 벽지초등학교 교사 배후용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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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경북 영천시 임고면 수성리 문주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임고초등학교 수성분교. 3명의 교사가 교실 3개에서 전교생 12명을 가르친다. 이처럼 규모는 초미니이지만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다른 어느 학교보다 정겹다.

여기에는 이 학교 배후용(裵後龍.34)교사가 지난해 8월 만든 홈페이지(http://my.netian.com/~12bebeto)가 큰 역할을 했다. 이 홈페이지의 '전원일기' 코너는 교사와 학생들의 꿈과 현실이 그대로 배어있는 일기·편지·동시 등으로 채워져 있다.

집에 TV가 없고 7살까지 도시구경을 못해 '수성 원주민' 으로 불리는 이상욱(1학년)군. 장래 희망이 대통령이라는 李군은 아버지를 따라 영천에 이발하러 가서 처음으로 아파트를 보았다고 썼다.

2학년 임승준군은 '용돈을 잘 주고 아침이면 깨워주는 할머니가 오래오래 살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고 했다.

裵교사도 지난해 10월 6학년 육심준군이 학교옆에 있는 감나무에서 따준 홍시를 먹고 '한달 월급과도 바꾸기 싫은 선물' 이라고 적었다.

특히 멀리 떨어져있는 네티즌들이 '벽지에서 애쓰는 교사들을 멀리서나마 존경한다' '도시아이들이 가질 수 없는 꿈을 안고 이 아이들이 커 나가기를 바란다' 는 격려글도 보내와 이들에게 힘을 보태주고 있다.

그러나 IMF의 고통에 따른 이농, 가난에 찌든 농촌의 현실도 담겨있다. 이농으로 1988년 금대초등 수성분교로 격하된 얘기며 많은 아이들이 할아버지·할머니 품에서 자라는 현실 등이다.

작년 가을 학교 운동회는 학생들보다 훨씬 많은 노인 1백20여명이 참석했고, 막바지엔 술에 취해 '취중 운동회' 가 돼 슬펐다는 글도 있었다.

벽지학교에 부임한 선생님이 두달만에 사표를 내고 떠나 아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했다.

裵교사는 "가난과 결손가정 등 환경은 어렵지만 나름대로 꿈을 가꾸어 가는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럽다" 며 벽지교사로서의 보람을 밝혔다.

영천〓안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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