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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적 대중주의 택한 중국, 체제 안정 지속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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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예순은 새로운 마흔(Sixty is the new Forty).”

미국 베이비붐 세대(1946~64년 출생한 세대)의 선두그룹이 막 예순에 진입하기 시작했을 무렵 미국에서 유행한 구호다. 전 세대보다 상대적으로 풍족했던 베이비붐 세대의 예순은 전 세대의 마흔만큼 젊기 때문에 새로운 출발을 기약할 수 있는 나이라는 격려이고, 자화자찬이다.

미국의 중국문제 전문가인 엘리자베스 페리(61·하버드 옌칭 연구소 소장·사진 왼쪽) 박사는 올해 환갑을 맞은 신중국을 바로 이 구호를 들어 분석한다. 예순 중국이 마흔 장년처럼 활기차다고 주장하지만 과연 그런지 짚어보자는 얘기다. 그래서 10일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한 강연의 제목도 “예순은 새로운 마흔이다(한데 그럴까?)”로 잡았다.

페리 박사는 강연에 앞서 윤영관(전 외교통상부 장관)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와 한 대담에서 “국제사회가 중국의 부상을 긍정적으로 포용하는 한 중국은 결코 위협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리고 “중국 공산당은 사회주의 대신 ‘실용적 대중주의(Pragmatic Populism)’라는 새로운 통치 이념을 도입했기 때문에 앞으로 상당 기간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음은 본지가 단독 취재한 두 학자의 대담 요지다.

▶윤: 국제정치의 권력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이동 중이다. 중국의 경제적 성장은 세계적으로 더욱 큰 영향력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사의 새 국면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쇠퇴는 거의 기정사실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은 군사력에서는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나라다.

▶페리: 우리는 미국이 도전을 받고 있는, 매우 흥미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 결과 상당수 미국인은 중국의 부상이 평화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견해에 회의적이다. 그러나 중국의 평화적 부상 여부는 국제사회에 달려 있다. 국제사회가 평화를 유지하고, 중국의 발전에 대해 현실적이고 협조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중국은 평화롭게 부상할 것이다. 반면 중국의 부상을 위협적이라고 간주하는 꼭 그만큼 중국은 위협적인 존재로 등장할 것이다.

▶윤: 13억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선 경제성장이 꼭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정치 안정이 필수적이다. 서방의 선진 기술과 자본도 필요하다. 서방 시장의 중요성은 다시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이를 위해선 미·중 양국의 우호가 핵심 전제다.

▶페리: 난 중국이 경제적·군사적으로 미국에 필적할 만한 국가라고 말하는 중국인을 단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 중국인들은 국제 문제보다는 국내 안정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들은 중국 체제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중국의 정치체제는 민주적인 탄력성(democratic resilience)이 부족하다.

▶윤: 1979년 이래 중국은 매년 10% 정도의 경제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소득 격차나 소수민족 문제 등 다양한 문제가 불거졌다. 그럼에도 중국이 안정적 정치체제를 유지하는 비결을 ‘실용적 대중주의’라는 개념으로 귀하는 설명했다. 난 이 개념이 현재의 중국을 읽어내는 설득력 있는 도구라고 본다. 그러나 중국이 이런 방법으로 계속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페리: 중국이 안정적인 체제를 얼마나 유지할지 예측하기 힘들다. 하지만 나는 중국이 상당 기간 안정을 유지할 것으로 보는 편이다. 지난 60년간 여러 고비 때마다 중국 붕괴론이 등장했다. 그러나 중국은 여전히 건재하다. 나는 그 비결을 중국의 실용적 태도에서 찾는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매우 실용적이고 탄력적인 모습을 보였다. 황제가 백성들의 생계를 먼저 우선시한 중국의 전통은 후진타오, 원자바오 등 현재의 지도층에도 고스란히 맞닿아 있다. 대중을 실용적으로 사랑하기, 이것이 중국 공산당의 새로운 통치 이념이다.

▶윤: 경제발전이 민주화를 가져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보인다. 한국의 현대사를 봐도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중국도 앞으로 상당 수준의 민주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페리: 한국과 대만의 민주화 과정을 보면 그런 가설은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부유한 일부 중동 국가들은 여전히 비민주적이다. 인도는 형편은 어렵지만 상당히 안정된 민주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부유하지만 권위주의적이다. 부유함과 민주화는 대개는 비례하지만 예외는 있으며, 중국은 가장 큰 예외다. 중국은 사회과학자들의 이론을 자주 배반하는 흥미로운 국가다.

▶윤: 중국엔 민족주의 색채가 농후하다. 개혁·개방 이후 사회주의를 통한 사회통합은 느슨해졌다. 대신 민족주의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민족주의는 국가가 지나치게 국민들의 정서에 의존하게 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페리: 중국 역사에서 민족주의는 매우 미묘한 이슈였다. 민족주의자들은 처음에는 외세를 공격하다가 그 뒤에는 외세 위협에 취약하다는 이유로 정부를 공격했다. 따라서 민족주의에 대응하는 중국 정부의 모습은 이중적이다. 처음에는 민족주의 시위를 지원하다가 일정한 선이 되면 막는다. 특히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에 민족주의는 양날의 칼이다. 정치적 민족주의가 종족적 민족주의로 변질될 경우 그 결과는 중국 정부에 비극적이기 때문이다.

정리=진세근·이상언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페리 박사=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중국 문제 전문가다. 미국 최고의 중국 문제 연구기관인 하버드 옌칭 연구소가 1997년 그를 소장으로 초빙한 이유다. 그는 상하이 태생이다. 선교사였던 부모는 당시 상하이 세인트 존스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그 후 부모를 따라 일본 릿쿄 대학 교정으로 이사를 갔다. 66년 귀국해 69년 윌리엄 스미스 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했고, 78년 미시간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중국어와 일본어에 모두 능통하다. 79년 그는 중국으로 돌아가 주로 민중 항거와 민초들의 정치적 행태를 분석해 냈다. 현재 미국 학술과학원 회원, 아시아연구기금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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