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과학 칼럼

시인과 과학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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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김춘수 시인의 ‘꽃’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붉은 얼굴을 한 화성은 늘 강렬한 몸짓으로 지구인에게 다가왔다.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조반니 스키아파렐리가 자신의 작은 망원경에 나타난 화성의 어두운 줄무늬들을 보고 ‘카날리(canali)’란 이름을 붙여준 게 1877년이었다. 해협, 경로, 또는 그리스 건축에 수직으로 파 넣은 장식용 홈들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카날리’가 영어권에서 ‘canals’로 번역되면서, 화성은 지적 존재가 구축한 ‘운하’라는 이름의 ‘꽃’으로 피어났다. 한편 미국의 퍼시벨 로웰이 직경 60㎝의 굴절 망원경을 자비로 구입하여 애리조나주 플래그스태프에 로웰천문대를 설립한 게 1890년이었다. 로웰 식의 꽃맞이 사업이었다.

화성의 줄무늬 모습과 극관의 면적이 계절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에 착안한 로웰은, 줄무늬가 극관에서 녹아내리는 물을 적도 사막 지대로 수송해 주는 거대한 용수로 시스템이라고 주장했다. 로웰의 주장에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가 도전한다. 그는 극지방의 물이 적도를 향해 오는 동안에 증발해 버리거나 땅에 완전히 스며들어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로웰은 준외교관 신분으로 조선에 근무한 특이한 경력의 인물이다. 그의 묘비명을 보면 인류의 평화를 희원하던 이상주의자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월리스는 엔지니어 출신으로 다윈과 함께 진화론을 발견한 인물이다. 평화를 꿈꾸던 로웰의 ‘꽃’을 엔지니어 출신의 월리스가 ‘짓밟았지만’ 대중은 로웰의 편이었다. 그래서 로웰의 꽃맞이 행사는 매리너, 바이킹, 패스파인더, 스피릿과 오퍼튜니티 등의 화려한 탐사계획으로 줄기차게 이어질 수 있었다.

스키아파렐리의 카날리는 1965년 매리너 4호가 보여준 매리너 대협곡의 전조였다. 한때 물이 넘쳐났을 수로의 흔적들도 화성 도처에서 알아볼 수 있다. 로웰이 ‘카날’이란 이름으로 불러주었을 때 화성은 ‘수로’라는 이름의 꽃으로 답을 했다. 계절에 따라 녹고 얼기를 반복한다고 로웰이 믿었던 극관은 물 얼음이 아니라 주로 이산화탄소 성분의 드라이아이스가 차지한다. 화성 북반구에 여름이 오면 극관의 드라이아이스는 이산화탄소 기체로 승화하여 남반구로 내려가 남극관에 다시 얼어붙는다. 한편 형성 초기에 풍부했던 물의 일부는 얼음으로 지하 영구 동토 층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월리스의 손도 들어줘야 한다.

지구인이 이름을 부를 때마다 화성은 자기 나름의 꽃으로 답을 해온 셈이다. 시인의 ‘이름 부르기’는 과학자의 ‘모형 세우기’와 같다. 과학에서는 모형을 설정하여 침묵하는 자연의 입을 열게 한다. 그러므로 과학 하기란 인간과 자연이 벌이는 이름 부르기다.

홍승수 서울대 명예교수·물리천문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