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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 뉴스 <52> 한국문학 수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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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신경숙씨의 장편 『엄마를 부탁해』가 연일 화제입니다. 출간 10달 만에 100만 부 넘게 팔려 국내 출판시장을 평정한 이 소설이 해외에서도 위력을 떨치고 있습니다. 11월 현재 소설의 판권을 사간 나라는 14개국, 선인세 총a액은 4억5000만원 정도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수치상 실적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합니다. 번역비 지원 없이 ‘작품 액면’만으로 팔리는 자체가 뜻 깊다는 겁니다. 10년 넘게 번역 지원에 투자한 결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는 겁니다. 해외로 잘 팔려나가는 다른 소설, 번역 지원 기관도 함께 알아봤습니다.

신준봉 기자

번역지원사업으로 물길 터

한국문학번역원 집계에 따르면 올 1월 기준으로 해외에 가장 많은 작품이 소개된 한국 문인은 고은(76) 시인이다. 시집 『만인보』와 소설 『화엄경』 등 모두 51종의 저서가 15개 언어로 이미 번역됐거나 번역 중이다. 고 시인의 뒤를 소설가 이문열(61)씨가 바짝 좇았다. 16개 언어로 50종이 번역됐다. 그 다음은 36종이 번역된 소설가 이청준(1939~2008)씨, 35종의 황석영(66)씨 순이었다.

이들의 문학작품이 이렇게 대거 해외에 소개될 수 있었던 것은 우선적 작품 자체의 역량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문학번역원·대산문화재단 등의 번역 지원사업의 공이 크다. 대산의 곽효환 사무국장은 “번역비 지원이 없었더라면 특히 프랑스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황석영·이승우씨 작품의 최초 소개가 과연 가능했겠느냐”고 반문했다. 콧대 높은 외국 출판사들이 생돈 들여가며 판권을 사가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신경숙씨는 물론 김영하(41)·조경란(40)씨 등 번역 지원 없이 해외 출판이 가능함을 보여준 일부 작가의 성과는 말하자면 오랜 기간에 걸친 투자의 결과다. 꾸준한 번역 지원을 통해 한국문학 알리기에 나선 끝에 이들 같은 작가도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곽 국장은 그러나 “아직 수확기라기보다 일부 열매를 맺는 단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최근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 작가는 소설가 이승우(49)씨다.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2000년 프랑스에 소개된 이씨의 장편 『생의 이면』은 같은 해 프랑스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페미나상 외국소설 부문 최종심까지 올랐다. 또 역시 대산에서 지원해 2006년 프랑스에 소개된 이씨의 장편 『식물들의 사생활』은 올해 갈리마르 출판사의 ‘폴리오 (Folio) 시리즈’에 포함됐다. 폴리오 시리즈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등이 포함된 프랑스의 대표적 문고본이다. 이씨의 작품은 1996년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독일어로 번역된 『생의 이면』 등 모두 세 작품이 프랑스·독일어 2개 언어로 번역됐다. 책으로는 4권이 나왔다.

신경숙·김영하, 지원 없이 ‘직거래’로 성과

김영하·조경란씨는 번역 지원 받은 작품보다 시장 거래를 통해 판권이 팔린 책이 더 많다.

김영하씨는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직후 자신의 출세작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미국의 명문 하코트 출판사에 선인세 1만 달러 조건으로 팔린 후 지금까지 모두 10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장편 『빛의 제국』은 미국·프랑스·독일·일본 등 6개국에 수출했다. 또 장편 『검은 꽃』이 프랑스와 일본에, 『아랑은 왜』가 일본·이탈리아에 각각 팔렸다. 이런 실적 중 번역원이나 대산문화재단의 번역 지원을 받은 경우는 3종 5권에 불과하다.

조경란씨는 장편 『혀』가 미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헝가리·이스라엘 등 8개국에 팔렸다. 이 중 미국·네덜란드에서는 이미 책이 출간됐다.

『엄마를 부탁해』해외 성공 의미
앞다퉈 사겠다는 외국출판사, 다른 작가에도 관심 가질 듯

“한국 문학사에 남을 만한 중요한 사건이다. 지금까지 한국문학번역원 같은 데서 번역비나 출판비를 보조해 줘야 겨우 책을 사가던 외국 출판사들이 스스로 거액을 내고 판권을 구입한 것 아니냐. 수 억원씩 투자한 만큼 팔아먹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최근 11년 만에 평론집을 낸 평론가 김화영(68·고려대 명예교수)씨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소설가 신경숙씨의 베스트셀러 『엄마를 부탁해』를 두고 한 말이다. 언론의 보도 행태가 ‘몇 개국에 판권이 팔려 선인세로 얼마를 받았다’는 유의 ‘실적 중계’ 일색인데, 그러다 보니 정작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다는 쓴소리를 하는 대목에서였다. 김씨는 “지금까지 외국 출판사들이 자발적으로 자기 돈을 써가며 판권을 사간 사례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무엇보다 『엄마를 부탁해』의 활약 이후가 기대된다”고 했다. 자국 문학시장에서 선전할 경우 재미를 본 출판사들이 다른 한국 작가들에게도 관심을 가질 거란 예측이다. 김씨는 “그런 점에서 한국문학은 지금 기관차 한 대를 앞세웠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한국문학 세계화의 신호탄 격이라는 해석이다.

문턱 높은 미국서도 7600만원 지급

그럼에도 『엄마를 부탁해』의 ‘실적’은 주목 대상이다. 지금까지 가장 업데이트된 실적 보도는 10월 중순 “13개국에 판권이 팔려 선인세 수입이 5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거였다. 11월 중순 현재 판권 수입국은 14개국으로 늘어났다. 『엄마를 부탁해』는 물론 신경숙씨의 다른 작품들에 대한 해외 판권 판매를 대행하는 에이전트사인 임프리마 코리아의 이구용 상무는 “아직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이어서 이름을 밝힐 수 없지만 포르투갈의 한 출판사가 판권을 사기로 했다”고 밝혔다. 나머지 13개국은 이탈리아·이스라엘·대만·미국·영국·독일·스페인·프랑스·네덜란드·브라질·일본·중국·베트남 등이다. 이 상무는 “선인세 총액은 4억5000만원쯤 된다”고 밝혔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북유럽·동유럽의 여러 나라 출판사들과 현재 판권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이 상무는 “판권 구입 국가가 20개까지 늘어날 걸로 본다”고 말했다. 이런 정도면 국제 출판시장에서의 판권 판매 실적을 무기로 국내 언론과 독자들을 유혹하곤 하는 외국의 번듯한 소설 수준이다. 우리는 20~30개국에 팔렸다는 외국소설을 만나면 혹하지 않는가.

이 상무는 “무엇보다 문턱 높기로 소문난 미국 시장에 그것도 비싼 가격에 팔린 점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엄마를 부탁해』 판권을 구입한 미국 출판사는 랜덤하우스의 계열사인 크노프(Knopf)로 6만5000달러(약 7600만원)를 지급하기로 했다. 이 상무는 “미국에 어떤 작가가 없겠느냐. 포르투갈의 주제 사라마구처럼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라면 모를까. 특정 국가에서 많이 팔리고 문학성도 높은 평가를 받은 책이라고 해서 미국 독자들이나 출판사 편집자들이 관심을 갖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탈리아나 스페인, 노르웨이 등 한국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미국과 문화적으로 가까운 나라들의 에이전트들도 미국 시장 진출이 어렵다고 토로한다”고 부연설명했다. 미국 시장 자체가 크기도 하고, 유럽의 문학이 아시아 시장의 문을 두드릴 때 직접 진출보다 미국 시장을 통한 우회 진출이 효과적이어서 목을 매는 형편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높은 선인세는 출판사 경쟁 때문

‘거액’의 선인세는 경쟁이 붙은 결과라고 설명했다. 여러 출판사들이 오퍼를 냈다는 것. 그러면서 “웬만한 미국 작가 작품이 유럽에 팔릴 때 선인세 금액이 2만~3만 달러인 경우가 허다하다”고 덧붙였다. 『엄마를 부탁해』는 제대로 대접을 받은 것이다.

성공 비결이 뭘까. 이 상무는 “외국 편집자들이 무엇보다 작품 내용을 맘에 들어 했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나 가정 등 문화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을 만큼 한국적 색채가 강하면서도 어머니라는 보편적 소재를 다뤄 흡족해 했다”는 것이다.

대산문화재단의 곽효관 사무국장도 『엄마를 부탁해』의 해외 성공에 대해 비슷한 얘기를 했다. 단기간에 100만 부 판매를 돌파한 점 에이전트의 적극적 마케팅 등도 주효했지만 엄마라는 보편적 소재를 다룬 점이 어필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구용 상무는 “『엄마를 부탁해』 같은 작품이 연타석으로 몇 번 나오고 판매 성적이 뒷받침되면 한국문학의 국제적인 인지도가 급상승할 수 있다. 또 “정부기관의 번역 지원사업도 중요하지만 결국 외국 시장을 뒤흔들 수 있는 건 현지 편집자·독자들의 입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민간 위주의 비즈니스 시장이 보다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상무는 “ ‘『엄마를 부탁해』 효과’는 이미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신경숙의 다른 작품, 안 된다면 한국의 다른 작가 작품을 볼 수 있는지를 묻는 미국 에이전트들이 있다”는 것이다.



문학번역원·대산문화재단
1400여 작품 50개국에 번역 지원

문학작품 번역 지원의 역사는 1980년대 문예진흥원(현 문화예술위원회)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전인 1970년대에는 주로 고전을 중심으로 번역이 이뤄졌다.

본격적인 번역 지원은 96년 ‘문학의 해’를 맞아 한국문학을 세계화한다는 취지에 따라 ‘한국문학번역금고’가 설립되면서부터다. 금고는 2001년 한국문학번역원으로 확대 개편된다. 문예진흥원과 금고로 이원화돼 있던 번역·출판을 한데 모아 사업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현재 번역원은 한국 근·현대문학과 고전에 대한 번역비용 지원은 물론 한국문학 작품을 수입·출간하는 외국 출판사들에 대한 지원, 한국문학 작품을 수출한 국내 출판사에 대한 인센티브 지급, 각종 교류 협력사업 지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물론 사업들 중에 핵심은 번역 지원이다.

번역 지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번역원이 미리 정한 지정도서 중 한 작품을 골라 번역자가 지원 신청하는 지정공모제와 번역자가 자유롭게 번역 희망 도서를 정해 신청하는 지정공모제 등이다. 두 경우 모두 원고 분량에 따라 최대 1600만원까지 지원한다. 올해 지정공모 대상 작품은 김동인의 장편 『운현궁의 봄』, 영어·러시아어로 이미 번역된 바 있는 오정희의 소설집 『불의 강』, 배수아의 장편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이성복의 시집 『정든 유곽에서』 등 25종이다. 번역원의 올해 예산은 70억원 정도. 이 중 16억원이 한국 문학작품의 직접 번역지원에 쓰인다.

대산문화재단의 번역지원은 92년 시작됐다. 작품당 1500만원씩 매해 5억~6억원을 번역지원에 쓴다. 대산문화재단 집계에 따르면 1889년 구비문학 작품을 묶은 『Korean Tales(한국민담집)』이 영어로 처음 번역된 이래 지금까지 모두 1400여 종의 한국문학 작품이 50개국 33개 언어로 번역됐다. 번역원과 대산문화재단의 지원 실적을 합한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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