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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필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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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나로서는 무엇인지 모르는 것, 그 하찮은 것이 모든 땅덩어리를, 황후들을, 모든 군대를, 온 세계를 흔들어 움직이는 것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코, 그것이 조금만 낮았더라면, 지구의 모든 표면은 변했을 것이다”라고 쓴 사람은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이었다(『팡세』). 역사를 합리적 인과관계보다는 우연적 사건의 연속으로 보는 우연사관(偶然史觀)의 신봉자들도 파스칼과 같은 편에 선다. 만약 그랬더라면,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의 치마폭에 빠져 본처를 버릴 일도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처남 옥타비아누스와 격돌한 악티움 해전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여기서 승리한 옥타비아누스가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로 등극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란 가정이다. 그러니 한 남성이 클레오파트라란 여성에 매혹 당한 우연적 사건이 역사의 향방을 바꿨다는 설명이다.

물론 우연만으로 역사를 설명할 수는 없다. 우연도 따지고 보면 필연의 산물이었기 십상이다.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서울대생 박종철의 죽음과 은폐조작 사건이 6월 항쟁의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꼭 그 사건이 없었더라도 민주화 운동이란 도도한 역사의 흐름에는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명제를 남긴 E H 카는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우연사관을 배격했다. 하지만 역사에는 분명히 우연의 역할이 존재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14세기의 터키 황제 바야제트는 통풍이 발병해 중앙 유럽으로의 진격을 중단했다. 역사가 기번은 이 사건을 들어 “한 사람의 한 가닥 근육에 생긴 종기가 많은 국민의 비참함을 방지하거나 연기시키는 수가 있다”고 기술했다.

엊그제 20주년을 맞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동독 공산당 대변인의 말실수란 우연에서 촉발됐다는 보도가 나와 화제를 모았다. 동독 주민의 여행 자유화 조치를 발표한 동독 공산당 대변인에게 기자들이 득달같이 발효 시점을 묻자 얼떨결에 “지금 당장”이라고 대답해 버린 게, 뜻하지 않게도 동독 주민들로 하여금 망치와 도끼를 들고 달려가 장벽을 무너뜨리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필연이겠지만, 하필이면 그날 그렇게 극적인 방식으로 무너진 것은 분명 우연의 힘이다. 그래서 역사는 재미있다. 우연 없는 필연만으로 돌아가는 역사의 수레바퀴란 그 얼마나 따분하고 답답하겠는가.

예영준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