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생명] (2) 결혼은 꼭 해야하나- 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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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 하고보면 불편하니 기피나는 건 당연

얼마 전 결혼 의식을 묻는 한 여론조사에서 많은 젊은 여성들이 결혼을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응답해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다.

대안(代案)이 있다면 여성들이 결혼을 안할 수도 있다는 태도를 보인 건 이 조사만이 아니다. 전에도 결혼 의식조사들에서 경제력이 있다면 결혼하지 않겠다는 여성들이 70% 정도를 차지하곤 했다.

이 사실은 결혼이 여성을 불편하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케 한다. 더 변화한 점이 있다면 이러한 의식이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근대사회 이래 가족은 애정의 처소이자 포근한 안식처라는 낭만적 관념이 널리 퍼져왔다. 부부를 기초로 한 핵가족이 정상적인 가족으로 특권적인 지위를 부여 받았고 또 많은 이들의 바람이 되어왔다. 그럼에도 소위 정상적인 가족은 아내 구타, 아동 학대, 심지어 성폭행과 살상 행위로부터 꼭 안전한 곳만은 아니었다.

여대생의 90% 이상이 평생직장 생활을 원하지만 결혼과 육아로 인해 취업을 중단한다. 또한 결혼으로 맺어진 가족의 부계(父系) 중심의 위계는 여성들로 하여금 소외감을 느끼게 만든다. 여성들은 변화하는데 결혼생활 방식은 변화하지 않는 현실에서 여성들의 결혼 기피는 오히려 당연하다.

그럼에도 결혼이 가장 행복하고 정상적인 선택이라는 생각 때문에 아직도 결혼 안하겠다는 딸의 머리를 깎아 가둬 두는 열혈 부모들도 있다. 성인 자녀의 독립을 허락하지 않는 부모 때문에 굳이 결혼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싶어서 결혼했다고 말하는 여성들이 적지 않다. 결혼이 때로는 불우한 선택이기도 하다는 증거다.

그러나 결혼을 안하는 이유가 이렇게 소극적인 것만 있을 리 없다. 결혼을 하고 안하고로 사람을 가르는 것은 여전히 결혼을 중시하는 시각에 따른 분류일 뿐이다.

흔히들 결혼 안하면 늙어서 외로울 것이라고 하지만 늙어서 외롭기는 결혼 하나 안하나 마찬가지다. 결혼 안하면 외로울 것이라는 건 결혼 중심의 문화가 만들어 낸 현상이자 얼마간은 허상이기도 하다.

결혼 안하고 사는 것은 사실상 폭넓은 교제와 사회생활 때문에 외롭지 않을 가능성이 오히려 크다.

결혼에 대한 이러한 의식변화를 가지고 가족 해체 운운하면서 인간 삶의 기반이 무너질 것으로 보는 건 기우다. 가족 해체에 대한 우려는 가족 연구가 있은 이래 줄곧 지속돼 왔다. 가족은 항상 변화해 왔고 보수적인 논자들은 항상 변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어떠한 삶의 방식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획일화는 아무래도 억압을 통하지 않고는 도달하기 어렵다. 인간 행동 레퍼토리는 다양하고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정해진 한가지의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문화적 편견, 제도적 억압, 그리고 편견에 물든 지식이 만연한 사회라면 문제가 크다.

이제는 무엇보다도 결혼 이외에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간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다양한 행복을 위한 다양한 상상을 허용하는 사회라면 좋겠다.

(이박)혜경(여성硏 가족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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