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광화문 광장 100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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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이상하다.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 없다. 광화문 광장에 대한 견해차 얘기다. 기자가 만난 건축가·디자이너 중에서 광화문 광장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는 거의 없다.

시민들 생각은 어떨까. 개장 99일째이던 8일 늦은 오후 광장에 나가봤다. 세종대왕 동상 앞에 선 사람이 꽤 많았다. 서울 토박이 이문재(63)씨는 서초동에 있는 집에서부터 버스를 타고 나왔다. “그저 교통분리대였던 곳이 우리 문화를 자랑하는 공간으로 변신한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아쉬운 점을 지적하는 이도 있었다. 전직 공무원 김경조(66)씨는 세종대왕 동상과 받침대의 부조화를 꼬집었다.

건축가 승효상씨는 광화문 광장을 ‘거대한 도로 분리대’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더 심각한 건 전문가와 시민 사이에 놓인 ‘미(美)의 분리대’다. 전문가 다수는 광장이 더 큰 상상력을 담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주길 희망했다. ‘유사광장’ ‘사이비 광장’(김명인 인하대 교수)이란 혹평도 서슴지 않았다.

왜 이렇게 양자 사이의 거리가 멀게 된 것일까. 좋은 도시란 전문가 몇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고, 전문가 못잖게 공간과 디자인에 대한 시민들의 상상력과 안목이 중요할 텐데 말이다.

광장은 소통의 공간이다. 그렇다면 엄밀한 의미에서 광화문 광장은 최소한 ‘정직한’ 광장인 듯싶다. 우리 사회의 빈약한 소통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렇다. 좋은 도시공간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문가와 시민이 만나고 소통할 프로그램이다. 비유컨대 소프트웨어적인 광장이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해마다 런던시내 주요 건축물을 공개하며 시민들의 공간 마인드를 키워주는 영국의 ‘오픈하우스’에 견줄 만한, 시민과 전문가가 함께 호흡하는 다양한 소프트웨어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시민 따로, 전문가 따로’ 식의 감식안으론 ‘문화의 두께’를 쌓아갈 수 없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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