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저작권법 발효후 달라진 출판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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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1995년 개정된 저작권법의 마지막 유예기간이 지난해로 만료됨에 따라 국내 번역출판계에 변화가 일고 있다.

과거 무단번역물을 출간했던 출판사 가운데 서점에 깔아놓은 재고를 거둬들이는 곳이 속속 생겨나고 있으며 새로 번역물을 출간하는 출판사들은 정식계약에 나서고 있다.

또 교보문고 등 대형서점을 중심으로 96년 7월이후 출간된 불법무단번역물들을 매장에서 없애려는 움직임도 있다.

93년 예경출판사는 영국 파이돈출판사로 부터 20세기 최고의 미술사가인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를 번역출판할 것을 제의받았다.

당시 열화당이 먼저 이 책을 번역출간한 사실을 안 파이돈측이 정식계약자를 찾았던 것. 94년 예경이 파이돈측과 정식계약을 맺고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를 출간한 이후 서점 매장에는 두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나란히 진열됐다.

당시는 한국이 저작자가 사망한 후 50년(혹은 공표후 50년)동안 저작권을 보호하는 베른조약에 가입하기 이전. 우리 나라는 86년 세계저작권협약에 가입해 87년 10월이후 공표된 저작물에 대해서만 계약을 체결할 의무가 있었다.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는 50년대 출간된 책이다.

예경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파이돈과 정식계약한 이후에도 열화당에서 개정판을 냈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 달리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고 말했다.

새 저작권법이 적용되기 전이어서 '정식계약' 의 의미가 별로 없어 그대로 판매해오던 열화당은 새 저작권법 시행을 앞두고 지난해 말 서점에 깔아둔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를 자발적으로 수거했다.

올해부터 저작권법이 완전히 효력을 미치게 돼 앞으로는 같은 책이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번역돼 매장에 진열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신 소비자의 책값 부담은 다소 늘어날 전망.

96년 7월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새 저작권법은 95년 1월1일 이전의 번역출판물인 경우에는 99년 12월31일까지는 '저작권자의 허락이나 보상없이 이용 가능' 하도록 유예기간을 뒀으나 올초부터 저작권자가 보상을 요구할 경우 반드시 보상하도록 되어있기 때문.

95년 1월1일 이후의 번역출판물은 반드시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도록 돼 있다.

예컨데 여명출판사가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95년에 출간한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은 새 저작권법에 위배되기 때문에 정식계약을 통해 올 1월에 출간된 민음사의 번역본 만이 유통될 수 있게 된다.

지난해 '생각의 나무' 출판사가 독점계약한 레마르크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 는 범조사(86년 12월1일).학일출판사(88년 10월1일).춘원문화사(91년 12월1일)등 3곳이 같은 작품을 번역출판해 시판 중인 작품.

지금까지는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배포할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저작권자에게 상당한 보상을 해야한다.

출판 관계자는 "저작권 사용료는 대개 책값의 6~8%를 지불하는 것이 상례여서 출판사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 이라며 "새 책은 물론 정식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지만 합법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종래의 책도 저작권자의 요구가 있을 경우 보상을 할 수 밖에 없으므로 이래저래 책값은 올라갈 수 밖에 없을 것" 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생각의 나무 김세영 전무는 "정식계약을 체결한 출판사가 선의의 피해를 입지않게 된 것은 선진 출판문화로 가는 바람직한 일" 이라고 말했다.

김국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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