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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옛 국정원 건물이 벤처 보금자리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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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서슬 퍼렇던 정보기관 건물이 벤처기업의 요람으로 탈바꿈했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중노송동 옛 국가정보원 전주지부 자리. 과거 금단의 땅이었던 이곳이 꿈을 가진 벤처기업가들의 정열과 땀에 의해 기회의 땅으로 일궈지고 있다.

이곳이 벤처기업 단지로 변한 것은 전주시와 의회가 한마음으로 '바뀌어야 산다' 고 결심했기 때문. 전주시는 국정원 전주지부가 1998년에 이사간다는 사실을 알고 이곳에 완산구청을 지을 예정으로 매입을 검토했다.

그러던 중 지역내 정보통신산업 육성이 더 급하다는 여론에 따라 구청 신축을 전면 보류하고 벤처단지를 만들기로 했다.

시와 의회는 매입 비용 73억원을 전액 자체 예산으로 충당키로 했고, 바로 국정원측과 교섭에 들어가 그해 2층 슬라브조 건물과 부지 3천4백여평을 사들였다.

새로 건물을 짓는 것보다 하루빨리 벤처기업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내부 수리만 마친 뒤 그해 11월 전주 소프트웨어 지원센터를 열었다.

전주시에 처음 생긴 창업보육센터인 만큼 입주 경쟁률이 5대1이나 됐다. 지난해 3월에는 재택(在宅)창업(SOHO)실이 둥지를 틀었고, 오는 3월 완공 예정으로 국정원터를 시민에게 돌려주기 위한 '정보통신 테마공원' 조성 공사가 한창이다.

부지 한켠에는 2002년 개원 목표로 지상 3층.건평 1천평 규모의 멀티미디어지원센터 공사가 한창이다.

창업보육센터 입주업체는 모두 22개. 사무실당 5평 정도의 좁은 사무실에서 젊은이들이 밤낮을 잊고 제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입주업체들은 매우 다양하다. 3차원 애니메이션 전문회사인 휴먼제품공학연구소는 역사와 문화의 도시인 전주의 특색을 듬뿍 담은 제품을 구상하고 있다.

전북 남원의 상징인 춘향을 캐릭터로 만든 '사이버 춘향' 을 2002년 월드컵에 맞춰 선보일 계획이다.

김희태(金希泰.39)사장은 "전주에는 판소리와 비빔밥 등 세계에 자랑할 만한 문화유산이 많다" 며 "지역 특성을 담은 독특한 콘텐츠로 세계를 향해 약진하겠다" 고 포부를 밝혔다.

사이버메딕과 바이오피아 등은 1년 넘게 흘린 땀의 결실을 눈앞에 두고 있다. 사이버 세계에서 의술을 펼친다는 사이버메딕은 국내 최초로 기능적 전기자극기(FES)인 '워킹맨' 을 개발했다.

FES란 중추신경계가 손상돼 활동이 불편한 환자의 운동 기능을 회복시키는 장치로 손바닥만한 크기에 정상인의 근육 움직임이 입력돼 있다.

이를 바탕으로 환자의 마비된 팔.다리에 전기 자극을 주어 정상인 상태의 운동을 시켜준다. 골절로 깁스한 환자가 깁스를 풀고 원 상태로 돌아오는데 보통 한달이 걸린다면 워킹맨을 사용한 환자의 경우 약 2주만에 원상 회복된다는 임상실험 결과가 나왔다.

임승관(林丞寬.32)사장은 "외제에 비해 절반 가격으로 국산화에 성공했다" 며 "조만간 양산체제를 갖춰 본격 출시하겠다" 고 말했다.

바이오토피아(대표 金玄.전북대 교수)는 컴퓨터 이용으로 생기는 스트레스를 감지해 색채.음향.향기로 사용자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제품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마무리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서울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다 고향에 내려와 시 영상산업팀장으로 벤처기업지원 업무를 맡고 있는 이승룡(李昇龍.34)씨는 "1998년 국정원터가 공개되자 45년만에 처음으로 와보았다는 주민도 있었다" 며 "창업보육센터내에 설치된 인터넷 카페에 하루평균 1백여명의 시민.학생이 찾는 등 옛 국정원터가 첨단정보센터로 거듭나고 있다" 고 밝혔다.

그러나 전주시와는 전혀 다른 사례도 있다. 신도심에로의 중심 이동으로 공동화 현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대전시의 도심 옛 시청사 옆에는 철문이 꼭꼭 닫힌 채 잡초만이 무성한 3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이 을씨년스럽다.

옛 기무사 소속인 충남기업사로 기무사가 철수한 뒤 2년 넘게 방치돼 있다. 대전시는 최근 소유주인 국방부와 이 건물을 벤처기업 창업보육센터로 전환하는 방향을 논의중인데 절차상의 문제로 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시민 박용남(朴容男.46)씨는 "이 건물이 지역의 흉물이 돼가고 있다" 며 "벤처기업 창업보육센터를 세우든 어떻게 하든 빨리 재활용 방안을 찾아야할 것" 이라고 지적했다.

전주〓이석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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