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민방위대 헛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민방위대가 흔들리고 있다.

1975년 창설돼 7백40만 대원을 가진 거대조직이 '재난시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 라는 임무의 수행은커녕 예산.조직이 위축되고 시민교육도 허울뿐인 유명무실한 조직으로 전락했다.

유사시 동원되는 일도 거의 없고 장비도 있으나마나한 겉치레용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정부나 국회는 근본적 개혁이 아니라 민방위대원 연령축소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민방위대원들은 물론 민방위를 관리하는 행정자치부 관계자들조차 그 역할을 의심하는 민방위대. 현실과 동떨어진 조직과 기능을 대폭 정비하는 등 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민방위기본법에 따르면 민방위대의 주요 임무는 적의 침공, 각종 자연재해나 인위재난 때 가동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이다.

그러나 본지 취재팀이 확인한 결과 1995년 이후 발생한 9개 대형재난 때 민방위대가 즉시 가동된 사례는 사실상 한건에 지나지 않아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8월 경기도 파주시 문산지역 수해가 극심했던 1일부터 4일까지는 민방위체제가 전혀 가동되지 않았다.

홍수가 끝난 뒤인 10일에야 응급복구를 위해 민방위대원을 파견키로 했으나 해당지역으로부터 거부당했다.

특히 지방자치제가 본격 시작된 1995년 이후 삼풍백화점 붕괴, 서해 연평해전 등 적극적인 민방위체제 가동이 필요했던 사태가 여럿 있었음에도 97년 전남 신안군 해일사태 때 한번만 동원됐을 뿐이다.

이는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뒤 동원시 발생하는 비용문제, 동원불참 대원에 대한 처벌로 인한 불만야기 등을 우려해 자치단체장들이 동원을 기피하는 경향 때문이라는 게 자치단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현재 민방위교육은 '시민불편 최소화' 의 원칙 아래 상설교육.야간교육.통신교육 등으로 나뉘어 1~4년차는 상.하반기 각 4시간, 5년차부터는 연1회 비상소집훈련을 실시하나 형식적이고 내용도 부실해 대원들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민방위교육에 불참했다는 이유로 1993년까지 3만4백91명의 시민이 고발돼 5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거나 구류처분을 받았고 94년 이후 98년 상반기까지 모두 1만9천2백여명의 시민이 10만~30만원의 과태료를 물었다.

민방위 업무도 위축돼 민방위담당 부서는 98년초까지 내무부 산하 민방위재난통제본부(옛 민방위본부)에 4개국이 있었으나 이후 98, 99년 두차례의 구조조정과정에서 3개국.2개국으로 줄어들면서 민방위 전담국은 없어졌고 지자체에서도 최근 구조조정과정에서 민방위과가 속속 폐지되고 있다.

대피소.비상급수시설.방독면 등 민방위 시설.장비 보유도 지자체 자율에 맡겨져 있어 제각각일 뿐 아니라 관리도 형편없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민방위제도 개선에 나선 국회는 지난해 12월 15일 대원 연령만 현행 50세에서 45세로 낮추는 민방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을 뿐 근본적인 개혁은 뒷전으로 미루고 있다.

전문가들은 "민방위대의 연령만 단축하는 것은 무력한 민방위제도를 활성화하는 것과 거리가 있다" 며 "근본적인 수술을 할 시점에 이르렀다" 고 지적했다.

기획취재팀〓안성규.강찬수.왕희수.고정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