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터뷰] 무교회주의자 노평구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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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한국의 개신교는 지난 1백년간 기적 같이 급성장했다. 성채 같은 대형 교회가 계속 지어지고 목숨 걸고 하나님 말씀을 따르려는 교도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고 있다. 반면 목회자의 축재와 추문이 화제에 오르고 성경을 두고 맹세한다면서 거짓말하는 신자들도 있다.

외화내빈(外華內貧)인가. 개신교계 자체 내에도 수치.물량적 팽창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다. '내 몸이 곧 교회요, 내 삶 자체가 예배다' 며 교회 없이 가장 도덕적.실천적인 신앙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노평구(盧平久.88)씨를 만났다.

여의도 盧씨의 아파트를 찾았을 때 이기백(前서강대).유희세(前고려대).주광호(前공군사관학교) 교수등이 빙 둘러앉아 盧씨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있었다.

- 무교회주의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두 사람 세 사람이 모이면 그 자체가 곧 교회입니다. 예수님도 교회가 없었습니다. 2천년간 내려오면서 쌓인 모든 조직이나 예식, 종교적 관행 다 털어버리고 기독교의 근본인 성경, 즉 말씀의 진리로 돌아가 그대로 살자는 것입니다. "

- 현행 교회제도에 대한 반발로 봐도 좋겠습니까.

"우리는 절대 누구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올바르게 살자는 것을 몸으로, 실천으로 보여주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진리와 생명과 사랑을 구체적으로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예배, 예수의 종교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안보이는 분이십니다. 영(靈)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내려보내 나타나셨기는 하지만요. 때문에 교회란 형체로서 그 영과 만날 것이 아니라 진실로서 만나야합니다. 기독교 교파마다 교리와 조직과 의식이 다릅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주장이 되어 형체로 나타나면 신도들은 도리없이 그 주장, 즉 인간이 만든 교리에 얽매이게 되는 것이지요. "

- 하나님의 말씀을 널리 전해 이웃을 구원하는 것, 즉 선교도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교회라는 조직 없이는 그 사명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없지않습니까□

"효율이나 시간은 하나님한테는 없습니다. 인간의 조직이 만들어낸 것일 뿐입니다. 예수도 조직이 없었습니다. 지금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조직이 앞에 나서고 있어 문제입니다. 중세라는 종교의 오랜 감옥에 유럽을 빠뜨린 것이 가톨릭입니다. 그 가톨릭의 제도를 부수고 인간을 구원한 것이 루터의 신교입니다. 그때 교회의 모든 조직과 제도를 거부했어야만 하는데 중요한 의식 몇 가지를 남겨놓은 것이 화근이 돼 다시 신교가 오늘날의 막강한 조직으로 자라난 것이 문제지요. 이제 다시 예수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진리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우리 몸 자체가 교회가 되어 참되게 살아가야합니다. 그러면 정말로 진리를 깨닫기 원하는 사람들은 이 길을 따를 것입니다. 효율과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진리가 중요한 것입니다."

- '청소년 시절 열심히 교회도 나간 걸로 아는데 왜, '어떤 연유로 무교회주의자가 됐습니까.

"'교회에 나가다보니 진리보다 서양의 문물을 배우는 것 같았어요. '어렸을적 교회에 나가기도 했어요. 그러나 영적으로는 늘 허전했지요. 그 때 김교신선생님이 이 땅에 무교회주의 씨앗을 뿌린 잡지 '성서조선' 이 제 혼을 사로 잡는 것이었습니다. 교회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 복음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지요. 그래 선생님을 찾아 뵙고 제자가 되었습니다. "

- 새로운 세기 교회는 어떻게 바뀔 것이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고 봅니까.

"사이버 시대에 집회 장소인 교회는 유물로만 남겠지요. 사이버.인터넷 시대라고들 합니다. 모든 정보가 실시간대로 그대로 원하는 누구에게나 전해지며 이제 정보가 다스리는 시대라는 것이지요. 정보는 다 인간들이 만드는 것입니다. 그 정보에 하나님의 생명의 진리를 불어넣어야만 합니다. 그렇지않고 거짓, 그릇된 정보가 장악한다면 인류의 파멸은 불을 보듯 뻔하지 않겠습니까."

- 하나님의 진리 위에 정보를 세워야한다는 말이 언뜻 듣기에 교조적.배타적으로 들립니다. 다른 종교나 가치관은 무시하는 것 같이요.

"무슨 말입니까□ 마땅히 원수까지 사랑해야하는 포용력이 중요한데요. 모든 종교의 진정한 가르침은 다 받아들여야합니다. 그래 진정한 가치관을 이끌어내 확고하게 정립시켜야만 합니다. 옛날 우리에게는 거짓말 못하고 참 말하다 죽어도 좋을 선비 나름의 가치관이 있어 나라를 이끌었는데 지금 우리 사회를 이끌 가치관이 없어 문제 아닙니까. ' 지도층은 지도층 대로, 언론은 언론대로, 가진 자는 가진 자대로 때를 바꾸며 자기들 좋을대로 거짓말만 밥 먹듯해도 괜찮을 정도로 썩었지않습니까. ' 이제 허례허식 다 버리고 오로지 말과 말만이 만나는 인터넷 시대, 우리 영혼의 진실을 나누어야합니다. 그 진실이어야만 정보는 생명의 바다가 될 것입니다. 그 위에 자연스레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정립될 것입니다. "

90을 눈 앞에 둔 고령임에도 盧씨의 말은 우렁우렁했다. 같이 모인 70, 80대의 학계 원로 '제자' 들도 서로 자신의 무교회 정신을 전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2시간 가량의 인터뷰 끝에 한 분이 기자에게 물었다. "우리 모습이 어떻느냐" 고. "제 아버님보다 훨씬 연세가 더 드셨는데도 다들 어린애 같으시네요" 했더니 "잘 봤습니다. 우리들은 어린애의 순수를 좇습니다" 며 환하게들 웃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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