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우리도 배아연구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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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과학은 종교적.법률적.윤리적으로 검증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발전이 이뤄지기 때문에 여기에 준비돼 있지 않았던 사람들은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를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면서 온통 세상이 Y2K 문제로 떠들썩할 때 개구리의 미분화 세포를 배양해 눈.귀 등 감각기관의 세포덩어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기사가 태아의 발생과 유전을 연구하는 필자에게는 남다른 감회로 새로운 2000년에 다가서게 했다.

1999년도 생식생리학 연구실 송년회에서는 인간 생명복제(生命複製)의 가능성, 유전자 지도가 완성됐을 때 의사의 역할, 유전자 재조합 치료제와 유전자 조작 농산물의 안전성 및 배아간세포(胚芽幹細胞)의 배양 등을 화두로 열띤 토론의 장을 이뤘다.

포배기(胞胚期)배아는 내부세포괴(內部細胞塊)와 이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세포벽으로 구성되는데 내부세포괴는 장차 신체 각 부위를 형성할 부분이고 외부세포벽은 태반(胎盤)이 될 부분이다.

배아간세포는 내부세포괴를 특수 조건에서 배양해 이들 세포가 미분화 상태로 무한히 분열을 반복하는 특성을 갖는 세포를 말한다.

만일 이러한 세포들을 특정형태의 세포로 분화시킨다면 신경세포.근육세포.혈액세포 등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이처럼 배아의 분화를 조작하려는 것은 크게 두가지 목적이 있다. 첫째는 이러한 연구가 배아세포의 분화과정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인간의 유전 정보를 이해하려고 노력해 10만여개에 달하는 인간의 유전자를 파악하는 유전자 지도 작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유전자를 모두 파악한다고 해서 인간의 분화 과정을 설명할 수는 없다. 인간의 모든 세포에는 각기 동일한 유전자가 들어 있지만 신경세포에서는 왜 어떤 유전자는 발현되고 또 다른 유전자는 억제돼 신경세포로 운명이 지어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둘째로는 배아의 분화를 조작함으로써 의학적으로 이용 가능한 특정 세포 또는 조직을 얻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많은 인간 질병이 세포의 기능 장애에 기인하므로 질병이 있는 세포를 건강한 세포로 대체할 수만 있다면 질병은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유전자치료(遺傳子治療)에 대비해 세포치료(細胞治療)라고 부르고 있으며, 배아간세포는 세포치료에 있어 건강한 세포를 무한대로 제공해줄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백혈병 환자에게 골수이식 대신 실험실에서 키워낸 혈액세포를 이식해 치료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배아간세포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해 배아간세포에서 특정 세포로의 분화를 완벽하게 조절하지는 못하고 있다.

일본 도쿄대의 마고토 교수팀 발표는 배아간세포에서 특정 세포 혹은 조직으로의 분화기전을 밝히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생각되며 앞으로 이같은 연구가 더욱더 가속화되리라고 기대한다.

생명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생명복제가 가능하도록 발전해 왔다. 그러나 배아간세포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생명복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장기 기증용 복제인간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며 단지 배아간세포를 이용한 기초적인 연구가 과장돼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과학이 발전한다고 해서 아무런 규제 없이 이를 인간에게 적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원자탄 개발에서 우리가 목격한 것처럼 과학의 발전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의 응용을 감시하는 것 또한 과학자의 의무다.

국내에서는 대한산부인과학회 윤리 지침과 국회에서 마련 중인 생명공학육성법 등에 의해 인간의 생명복제를 원칙적으로 금하고 있으나 수정후 2주 이내의 배아에 대해 의학 발전을 위한 기초적 연구 또는 환자를 치료하려는 목적의 연구는 허용돼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난 10여년간 배아에 대한 연구가 과학 또는 의학적인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고 종교적.사회적으로 지대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음을 경험한 바 있다. 앞으로 배아간세포에 대한 연구는 그에 수반되는 사회윤리적인 면을 충분히 검토한 후 적절한 지침이 마련돼 인간에게 최대한 이로운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되도록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다.

문신용 <서울대의대 교수.산부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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